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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시케 May 21. 2021

상담실에서 일어나는 역설

가능성의 불가능성, 불가능성의 가능성


우리 삶에서는

어떤 역설 속에 더 깊고 넓은 진실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지요.

상담실 안에서 일어나는 역설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1. 할 수 있었던 말보다

할 수 없었던 말이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상담실뿐만 아니라 모든 중요한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는 할 수 있었던 말만큼이나 할 수 없었던 말속에 더 깊은 진심과 진실을 담게 되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래서 상담을 마치고 나면 그날 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정리하며, 하고도 싶었지만 할 수도 있었겠지만 차마 하지 못한 말이 무엇일까 가늠해보곤 했었어요.


2. 상담이 정말 필요한 사람은 상담에 오지 않는 사람, 상담에 오지 못하는 사람 일 수 있어요.



상담에 올 정도로 자신을 보살필 수 있는 시작점을 스스로 혹은 주변 사람의 권유로 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분은 정말 상담이 필요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또 그러기에 지금 상담실에 오지 못하는 분들이 상담실에 조금 더 편하게 오실 수 있도록 상담실 문턱을 낮추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더불어 했지요.



3. 상담실에 오는 시기는

어쩌면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보통은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기에 상담을 받으러 온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정말 고통스러울 때에는 상담을 받으러 오실 생각조차 못하시거나 이를 시행할 몸과 마음의 힘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통의 정점에서 조금 벗어난 상태이거나 혹은 어떤 고통이 다가올 것 같은 내면의 위기를 느꼈기에 상담실에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상담을 시작할 때 ‘왜 지금이죠?’라는 질문이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 때도 아닌 ‘지금’ 상담을 받으러 결심한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언제나 있었습니다)



4. 상담의 과정에서

더 이상 다룰 것이 없이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진짜 상담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상담을 받는 데에는 시간과 비용이 들고 마음의 에너지도 듭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상담을 받고 나서 마음에 안정을 찾으면 스스로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이제 상담을 종결할 시기가 온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가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럴 때 진짜 작업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당장 시급히 살펴야 할 고통과 위기가 없을 때, 말하자면 마음의 흙탕물이 물과 흙으로 나뉜 차분한 상태에서 우리는 마음의 본질을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어느 정도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이 시기에 종결을 해도 충분히 자신을 다독여 갈 수 있기도 하지만 이 전에도 비슷한 힘겨움이 계속되었던 적이 있다면, 상담을 얻게 된 통찰이 일상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리고 또 한 번의 위기를 잘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기간을 두고 종결하는 것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5. 상담실은 한 존재가 '온전히 혼자일 수 있게 해주는 함께’를 경험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어떤 내담자분이 하셨던 말씀을 시작으로 해보게 된 생각이었는데요,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곳에 오면 혼자 인 것 같아요. 제가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에요.”


처음에는 이 말의 참의미를 잘 몰랐었는데 얘기를 듣다 보니 혼자를 단절이 아닌 연결로 경험할 수 있게 되는 역설이 상담실 안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더군요.

‘혼자’와 ‘함께’가 반의어가 아닌 동시성을 가진 연결어로 존재한다는 것이 상담실이 가진 역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상담 관계를 통해 사람들이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게 해주는 끈끈한 함께’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6. 소망의 불가능성을

가능성으로 만나게 해주는 공간이자 공감입니다.



상담을 얘기할 때마다 저는 항상 가능성과 불가능성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곳에서 우리는 우리 내면의 간절한 소망과 그 소망을 펼쳐나가는 힘겨움, 그 소망의 불가능성, 그로 인한 결핍감과 좌절과 상처의 감각을 내내 이야기하게 되거든요. 단지 이야기해 나갈 수 있을 뿐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타인의 마음에 닿으려고 해도 조금 더 가까이 근접해 갈 수 있을 뿐 그분의 마음을 감히 다 헤아리기가 불가능하거든요. 하지만 또 이야기를 할 수 있음으로 충분한 가능성의 지점과 출발선을 알게 되거든요. 불가능성을 수용하고 가능성에 도전하기 시작하거든요.


때론 불가능성에 가로막히는 듯해서 이미 한계를 감지하면서도, 저는 차츰, '불가능성'을 '닫힌 무기력의 틀'이 아닌, '열린 가능성의 틀'로 보게 되었던 것 같니다. 결국은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안간힘을 계속한다고 해도, 언제나 이 관계의 틀 안에서 이루어 가는 것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그 속에 우리 삶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불가능의 가능성과 가능성의 불가능성을 봅니다.








역설의 다른 말은 인간성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변화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그 변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나 자신을 마주합니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결국 나를 위한 마음이었음을 봅니다.


가장 약하고 여린 마음에 담긴

가장 강인하고 단단한 마음을 실감합니다.


가장 불편한 진심 속에 담긴

가장 편안한 진실을 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역설적이고도 인간적인 만남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계속될 것을 상상해보면,

무조건 응원하는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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