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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시케 Jan 09. 2021

그곳에 가면 제임스가 있었다

세상에 기쁨을 불러오리

큰 마트에 가면 물건도 더 많고 더 저렴하고 더 신선하지만, 나는 주로 작은 마트에 간다.
큰 아이 학교가 끝나고 오는 길엔 항상 Sain'sbury local에 들르는데 그곳에 가면 제임스가 있다.


제임스는 무척 친절하다. 내가 처음 이 마트에 갔을 때 카운터에서 물건 계산을 해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씩 웃는데 영국에 와서 친절한 낯선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뼛속까지 친절한 사람은 제임스가 최고라는 생각을 했다.

제임스는 우리(나는 항상 아이 셋을 대동하고 마트에 가기에 나는 언제나 ‘우리’라는 세트로 조금 떠들썩하게 등장한다)를 만나면 아이들 한 명, 한 명 에게 인사를 하고( ‘학교 어땠어?’ ‘오 그거 뭐야? 네가 만든 거야? 오 말도 안돼!!! 나 주면 안 돼? 아니 정말이야 나 주면 좋겠어.’) 나에게도 안부 인사를 한다.

다른 직원들처럼 ‘잘 지내지’를 이야기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좋아’‘ 그럭저럭 잘 지내’ 혹은 ‘요즘 너무 바빠. 피곤해’ 이런 나의 답을 듣고도 한참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투닥거리다가도 제임스를 만나고 장바구니를 유모차에 싣고 오다 보면, 정말 잘 지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잘 지내니?’ 그럭저럭 잘 지내, 넌?' 딱 이 정도의 대화만 해도, 일상을 함께 지나가는 '그냥 아는 사람' 이 있다는 것으로 일상이 일상답다. 아이들에게 하이파이브를 해주며 ‘잘 가, 또 와’를 일상적으로 이야기해주는 동네 삼촌이 있다는 것으로 아이들은 기뻐한다. 제임스는 육아하는 일상에 마주하는 좋은 쉼표였다.

그래서 나는 물건이 더 많고 더 싼 큰 마트에서 한꺼번에 많이 사 오기보다는, 동네 마트에 매일 같이 비슷한 시간에 등장했다가 퇴장하며 조금씩 자주 사기를 반복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길에 둘째가 조금 전에 제임스와 나눈 이야기를 나에게 다시 외친다.

“Happy new year. Bring the world joy'

세 살 배기가 말하는 '세상에 기쁨을 불러오라'는 이야기는 마법처럼 귀엽고 푸근하다.

(물론 그 천사 같던 세 살 배기는 그 말을 하기가 무섭게 마트에서 사 온 초코를 바로 안 준다고 떼쓰기를 시작한다)



(작년 이 맘 때 썼던 글입니다. 그 후 코로나로 인해 작별인사도 할 수 없었던 제임스 삼촌이 잘 지내길 바라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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