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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시케 Mar 04. 2021

태교는 계속되고 환대는 반복된다

너를 환영해




아이를 임신했을 시기
태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생각은 결국 네 줄기로 모였는데,

첫째, 태교는 엄마를 위해 하는 것이었다.


호르몬이 출렁이는 이 시기 몸도 마음도 편하지 않기에,

즉 쉽기에 하는 것이 아니라
쉽지 않기에 태교는 필요하다.


둘째, 태교는 아이를 위해 하는 것이었다.

아이를 환영하는 마음, 아이에게 세상의 모든 좋은 기운이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었다.

셋째, 태교는 태아기와 육아기를 포괄한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쉽지 않기에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태중에 있을 때보다 더 본격적인 마음 수련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태교는 그 첫걸음이자 연습 과정으로 중요하다.

넷째, 태교는 모두 함께, 계속하는 것이다.

아기가 소중하듯, 아기를 품는 엄마도 소중하다.

우리가 임신한 엄마들을 보호해주듯,
임신기를 무사히 잘 마친 엄마들도 보호가 필요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도 함께 잘 돌봐주어야 한다.



그렇게 태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태아 심리학>이라는 영역이 따로 있고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속  한 장면에 오래 마음이 갔다.
입양한 아기를 치료하는 장면이었다.

입양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찌 되었든 버려진 경험을 한다는 것,

아이로써는 무의식적으로 세상의 거부를 감지했을 것임을 전제로 한 치료였다.


이런 버림받음은 언어와 기억 와 의식 이전의 경험이지만 때로는 우리가 이야기할 수 없는 우리에 대한 사실이 우리 생을 관통하는 어떤 화두가 되기도 하는 바,
이 경험을 제대로 복구하는 마음 작업이 필요하다는 치료사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그럼에도,
과연 이런 마음을 어떻게 '치료'라는 이름으로 할 것인가, 더구나 아직 아기에 불과한 작은 아이를 데리고?



궁금하기도 하고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곳에서는 미끄럼틀을 이용했다.



아기는 미끄럼틀을 계속 타고 내려오고 또 내려온다.
그러면 양부모님은 미끄럼틀의 끝에서 아이를 기다렸다가 아이를 받아 안고 또 받아 안으며 외친다.






환영해!

환영해!

환영해!​





아이의 부모가 되기를 선택한 엄마, 아빠는,
백번, 천 번이라도 같은 말을 해줄 태세로
한결같이 웃으며 외치고 또 외친다.



환대의 반복
사랑의 반복이었다.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데도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 아이가
부모님 품에 안기는 장면을 보며
계속 뭉클했다.



이 반복을 통해 아이는
세상과 더 깊이 결속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 반복을 통해 아이는
'진짜 부모님'을 만났을 것이었다.



아이를 만나는 과정이 모두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태아는 위험천만하고 험난한 여정을 통과해서
안온했던 자궁 밖으로 나온다.
출생은 사실, 엄청난 트라우마를 통과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아이는
'단지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환영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한 때 아이였던 우리는
'단지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환영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단지 내 곁에 도착했다는 것'만으로
환영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이런 환대의 반복, 사랑의 반복을
온몸과 마음이 닿도록
반복 반복 또 반복하며 살아야 할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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