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반복되는 일들에 많이 지친 어느 날이었다. 나는 동네 언니에게 하소연을 했다. 요즘 너무 힘이 들어서 한국에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한국 음식들도 그립고 한국의 친구들과 가족들도 그립고 한국에서 일하던 시간도 그립고 많은 것이 그립다고. 이젠 정말 어딘가에 흰 수건이라도 던져야 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언니는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끄덕이고 안아주었다. 나는 그저 하소연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미 마음이 풀어졌는데, 돌아오는 길에 언니의 이 말이 내 마음에 남았다.
You have beautiful children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다른 말보다 더 크게 들렸다. 아마도 그때는 힘들어서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 지도 음미하지 못하고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는데 언니가 해준 그 말로 다시 마음의 균형을 잡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어디에서 처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담 공부를 하기 이전부터 알고 있던 얘기가 생각났다. 힘겨움을 표현하는 말이 영어로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pain이고 다른 하나는 suffering이다. suffering은 어떤 의미 없이 내내 고통스럽기만 한 힘겨움을 이야기한다면, pain은 그것을 통과함으로써 의미가 있는 성장하고 성숙해나가는 과정 속 고통을 의미한다. 행복한 고생이었다. 언니의 말은 pain의 의미를 비춰주고 있었다. 내 힘겨움에 분명한 의미가 있음을, 그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보게 주었다.
언니 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거리를 걷다 보면 낯선 사람들이 다가와 이런 말을 해줄 때가 있었다. You have beautiful children. They are adorable 그러면 나는 새삼 아이들을 다시 내려다보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해준 이야기를 다시 나의 주어로 바꾸어 나에게 말해주게 되기도 했다. Yes, I have beautiful children. 외출 준비를 시키며 신경이 곤두서서 안 보였던 것, 아이들을 뒤쫓아 다니며 숨이 차고 지쳐서 못 봤던 것을 그렇게 다시 보게 된다. 그렇게 타인이 나에게는 거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내 일상의 아름다움을 비춰주는 거울, 내가 주목하지 못하는 내 일상의 가능성을 비춰주는 거울. "그래 힘들지? 하지만 잊지 마, 너는 아름다운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멋진 엄마야. 너의 힘겨움에는 멋진 의미가 있어. " 언니의 말이 내 안에 이렇게 스며들어, 나도 다시 그 말을 나에게 다시 해줄 수 있었다. "그래 힘들지? 하지만 잊지 마. 나는 아름다운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멋진 엄마야. 나의 힘겨움에는 멋진 의미가 있어." 그래서 나도 지나가다가 아이들이 예뻐 보이면, 망설임 없이,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이런 마음은 숨길 필요가 없는 것. 누구에게라도 해줄 수 있는 것. You have beautifl children! They are adorable! You are a wonderful mum! 때로는 너무 당연해서 알 것 같지만 모를 때도 있고, 잊을 때도 있기 때문에, 어떤 과장이나 어떤 부산한 의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비춰주어도,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나를 비춰주는 좋은 거울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나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거울이 되어주려 한다. 거울 관계들로 이루어진 거울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