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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시케 Feb 02. 2021

혼나는 것이 혼내는 것보다 더  힘든 것임을




나의 첫째는 산만하고 서투르다

아이임을 감안해도 많이 서투른데, 더불어 눈치도 없다.

장난을 칠 때에도 마지노선을 잘 모른다.

말하자면, 여럿이 함께 장난을 치다가도 결국 혼나는 아이가
나의 첫째와 같은 유형의 아이라고 할까.

​악의가 없는 것을 알지만,
순수하고 순진해서 그런 것을 알지만,
몰라서 그런 것을 알지만,

​나는 아이 이름을 부르며 가슴을 치곤 한다.


"아이고! 선재야!!"


나는 매일같이 아이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며

'대체 언제쯤이면 말 아픈 줄 알래?'를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날은 남편이 회사에서 일찍 돌아온 날이었다.
오랜만에 아빠와 놀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첫째는
어김없이 선을 넘기 시작했다.



안경을 쓰는 남편에게 안경을 가지고 하는 장난이란,
충분히 정색할만했다.
이미 아이가 한 개 망가뜨린 전적도 있다.



남편은 나처럼
"아이고 선재야!"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가
그래도 아이가 장난을 멈추지 않자
화를 내며 다른 방으로 가버렸다.





남편의 성나고 답답한 마음을 백번 이해했다.
아이에게 '어이구' 눈빛을 한번 쏴준 다음,
위로의 말을 건네려고
표정이 좋지 않은 남편 옆에 앉았다.





"쟤가 좀 그래.
멈출 줄을 몰라서 항상 이러네요."



남편은 내 말에 미동이 없다.
여전히 무거운 표정.










한참 뒤에 남편이 입을 떼었다.


"아니, 그보단
선재가 하루 종일 혼날 일만 계속 벌어지니
계속 혼나기만 하다 보면 마음이 어떨까 싶어서요."



그 순간 쿵,
내 마음에 잔잔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혼내느라 힘들다고만 생각했지
혼나는 것이 더 힘들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구나 싶었다.







내 말이 스며들지 않아서
계속 같은 반복 구간을 도는 느낌에 힘이 들 때
그저 아이이기에

'이해해줘야 한다'
'공감해줘야 한다', 고 생각했었다.


그런 순간, 나에게 공감과 이해는
' 해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쓰는 마음은 그 결이 조금 달랐다.



이해나 공감이라는 세련된
마음의 기술과 용어 그 너머에 자리 잡은
더 큰 마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갯물과 강물, 세상의 모든 작은 물줄기를 아우르는
바다같이 깊은 마음이었다.




결국 그날 내 안에 남은 마음은 측은 지심이었다.


해준다는 생각도 없이

무조건 안됐다, 애쓴다, 는 마음을
바탕에 깔아 두는 것.






정말로 가까운 사람,
내 사람, 내 사랑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측은 지심으로 대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이 결국에는
절로 공감과 이해에 이르게 되는 길이지 않을까





혼나는 것이 더 힘든 일이라는 담담한 사실 앞에
내 마음을 내려놓자,
혼내느라 힘들었던 뜨거운 마음이
제 온기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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