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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프시케
Oct 16. 2021
숨과 쉼을 주는 마주침
오르막이 오르막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몸부림을 치고 저항을 하는 작은 두 아이를
유모차에 매다는 사투와
그 사이 또 어디론가 도망가있는
큰 아이를 큰 소리로 부르며 걸어가는 길.
유모차를 밀던 손이 후들거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야트막한 오르막길이
에베레스트 등반처럼 느껴지는 그때,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벨라의 할아버지가 보였다.
중국말만 알아들으시는 할아버지께
나는 영어와 중국어 단어를 섞어
짧은 인사를 나누곤 했었다.
할아버지는 학교가 끝나면
손녀를 데리러 오시기도 했고,
또 때로는 누군가의 생일 파티에
손녀딸을 데려다 놓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생일잔치가 끝나기를
홀로 기다리시곤 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할아버지의 주름과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옆 표정을 보며
할아버지의 마음이 어떨지
가늠해본 적이 있었다.
어떤 사연으로 타국에 와 계신지 궁금했지만,
제대로 물을 언어가 없어
묻지도, 듣지도 못했다.
우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 대신 눈짓으로,
같은 반 아이들의 보호자들이라는 공통분모로
서로 반가워하며 인사를 하곤 했었다.
할아버지는 표정 없는 얼굴로 걷다가도
눈을 마주치면 온 얼굴의 주름들을 총동원해서
놀랄 만큼 환하게 웃어주시곤 했다.
그날은 기운이 나지 않아
유모차에 앉은 아이들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다가
오르막길을 가기 전 숨 고르기를 하려고
서서 쉬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멀리서 인사를 한다.
무표정이었다가 순식간에 환해진 웃음 주름들.
할아버지는 손짓으로
어떻게 세명을 낳아서 데리고 다니냐며
아이 셋과 나를 묶는 동그라미를 그렸다가,
나는 한 명도 힘든데 너 참 대단하다며
벨라를 가리켰다가 자신을 가리켰다가
손가락 세 개를 보여주었다가 나를 가리켰다가,
마지막엔 엄지를 들어 보이셨다.
할아버지의 손짓에 나도 모르게 웃게 되고
긴장이 풀어지니, 영어도 중국어도 아닌,
내 모국어가 절로 나온다
'참 정말, 그러게나 말입니다!'
할아버지는 내가 바로 떠나지 않는 걸 보고는
다가와서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러고는 갑자기 눈빛이 달라지시더니
굉장히 진지한 자세로
아이들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들의 안전벨트를 점검해주며
자세를 다시 잡아주셨다.
그 모습에 괜히 리 울컥했다.
한국이 계신 시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아버님도 언제나 말이 아닌 행동으로,
눈길로 손길로, 아이들의 옷깃을 여며주며
벨트를 수시로 확인하시며,
사랑을 표현하시곤 하셨다.
저항하며 앉느라
마음도 몸도 조금씩 뒤틀려 앉아있던 아이들도,
할아버지의 눈길과 손길에
금세 순해지고 할아버지가 하잔데로 한다.
나도 아이들과 사투를 벌이다가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가다듬었다.
그렇게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데
오르막이 오르막 같지 않고
마이너스로 치닿던 마음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듯했다.
애써 웃으려 하지 않아도
그냥 다시 웃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스치듯 마주쳐간 그 짧은 시간은
그날 내가 누군가와 나눈 어떤 말 통하는 대화보다
나에게 가장 큰 쉼표를 주었던 마주침이었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의 머리만 쓰다듬어주고
벨트만 바로 잡아준 게 아니라
기운 없는 내 마음도 쓰다듬어주고 잡아준 것.
아이를 키우다 보면 우연히 그렇게
작은 쉼표와 같은 마주침을 반복하게 된다.
덕분에 보기만 해도
숨이 턱 걸려오는 것 같은 오르막길도
웃으며 지나갈만한 것이 되었다가,
또 그 후에 찾아오는 내리막길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씽씽 걷게 되는
마음의 전환을 만나게 된다.
아기 키우는 엄마한테는 너무 소중한 마주침,
일상 구석구석에 송송 히 박혀 뜻밖의 힘을 주는,
보물 찾기와도 같은 쉼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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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
마음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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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마음쉼표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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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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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고 느낄 수는 있죠. 하지만 혼자는 아니죠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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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마음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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