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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시케 Oct 16. 2021

기억할 거라는 걸 기억해

우리에겐 어떤 악몽이든 이야기로 만들 힘이 있어




아이들을 재우고 글을 쓰려고 했는데

첫째는 나를 따라 나온다.

나는 글을 쓰고 첫째는 책을 읽기로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둘째가 흐느껴 우는 소리에 다시 침실로 올라가는데

첫째가 묻는다.



"Mum, why are the babies crying while sleeping?"

(엄마, 아기는 왜 자다 우는 걸까?)



'나야 말로 알고 싶다', 는 생각을 했다.


둘째를 안고 토닥이며 첫째에게 건성으로 답했다.



"Maybe it's because of the nightmare."

(악몽을 꿨나 봐.)


밤 11시지만 여전히 생생한 목소리로 첫째는 말한다


"You know what? I don't have nightmares!!!"

(엄마 나는 악몽을 꾸지 않아!!)


나는 여전히 둘째가 깬 것에 마음 쓰여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Ok. It 's late. Time to sleep."

(그래? 얼른 자라. 늦었다.)


하지만 첫째는 이제 대화를 시작했을 뿐이다.


"Mum, Have you had nightmares?"

(엄마, 엄마는 악몽을 꾼 적이 있어?)


나에게 향하는 질문에

둘째를 토닥이며 셋째의 이불을 덮어주며

가만히 생각해본다.

그리고 첫째에게 최근 나의 악몽을 이야기해준다.


"Of course I sometimes have nightmare,

a terrible one.

(엄마는 악몽을 꾸곤 하지.

며칠 전에 이런 악몽을 꿨어.

뭐였냐면, 막내가 자고 있는 유모차를 끌고

가파른 언덕을 너희들과 함께 가는데 말이야

그곳은, 엄마가 너만 할 때 할머니 집까지

혼자서 걷던 길이기도 했던 듯

낯설 고도 익숙한 길이었는데 말이야.


어느 순간 길이 끊기고 어둠이 밀려오고

늑대인지 여우인지가 길을 가로막고

엄마는 너희들을 챙겨서 개울을 건너

겨우 다른 곳으로 피했는데 말이지,


다 무사하다고 안도하는데

유모차가 보이지 않는 거야!

그래서 패닉 했지!)"



그랬더니 아이가 갑자기 활기를 띤다.



"Mum I know!!

When you think about it,

it is not really a nightmare!

Because when you lost me,

or when I lost you,

I know what we should do.

And we can find each other.


(엄마, 근데 그건 악몽은 아닌 거 같아.

왜냐면 엄마가 나를 잃어버리거나

내가 엄마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아니까!)



그러면서 첫째는 본인이 혹시라도 길을 잃으면

다시 엄마를 찾는 법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

(How?)



"다른 데 안 가고 거기서 계속 기다리면,

그럼 엄마가 나를 찾으러 올 거잖아."

(I should go back to where I was, then

I know you would come to find me and

I am not going anywhere else. )



이 이야기를 들으며 둘째를 내려놓는데,

안아주고 다독이는 손길에

빨랐던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방향 없이 흔들던 몸부림이 잦아들고

거친 숨 대신 편안하게 늘어진 숨을 내쉬며

다시 자리에 누울 준비가 된 둘째를

그렇게 내려놓는데,


마음이 찡했다.



그러네, 우리가 서로를 잃을 걱정 하지 않고

잃더라도 다시 찾을 방법을 알고 있다면

알고 있다는 사실에 이렇게 한점 의혹이 없다면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이에게 얘기했다.


"너에게 얘기하길 정말 잘한 거 같아.

'악몽'을 '이야기'로 바꿔주다니

엄만 이제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

정말 고마워."


(Now I am relieved that I had talked with you.

You turned my nightmare into just a story.

 I feel that I don't have to panick.

Thank you. )




첫째는 기분 좋게 웃으며

다른 악몽도 얘기해달라고 했다.



"내가 다른 악몽도 이야기로 바꿔줄게.

다른 악몽도 또 말해줘요!!"

(I am sure I can turn other nightmares

 into just a story too.

 Tell me more!! )




이제는 나도 나른해져서 아이 곁에 나란히 누워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구워온 악몽,

너무 익숙하고 진부한 오래된 화두가 된 악몽을

속삭여 주었다. 고백하기로 했다.


아이의 근거 없어 충만한 자신감과 단순해서 순수한 활기에

나의 자신 없음과 복잡한 변명들을 싣기로 했다.



"있지, 엄마는 말이야,

비슷한 악몽을 자주 꿨어.

상황과 장면은 항상 조금씩 다르지만

그건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에 대해

완벽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깜빡하는 것에 대한 거야.


뭔가를 말해야 하는데

혀가 딱딱해지고 머리가 새해 얘지는 것,

더 철저히 준비하고 연습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잊어버리고 잃어버릴까 봐 걱정하는 거지."



어지럽고 추상적인 이 고백에도 아이는

가장 단순한 현답을 나에게 주었다.


"엄마 엄마가 가끔 깜빡하긴 하지.

근데 항상 다시 기억해주던걸

연습을 더 못해도 기억할 거라는 걸 기억해."


(Mum I know you will remember

anything and everything.

because you sometimes forget things.

but you always remember again!


Even if you couldn't practice more,

you will remember, remember.)




그리고는 'remember remember'라는 표현을

나란히 반복한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혼자 웃으며 반복하다 잠들었다.



귀엽고  정다운 아이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셋째의 기침 소리에 숨죽이고 있다가

둘째가 나에게 다리 한쪽을 걸쳐두고 있어

몰래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를 계산 하다가

결국 나 역시 잠들어버렸다.




자면서 remember (to) remember의 의미를 기억하자고

나도 잠꼬대를 하며 중얼거렸을지 모르겠다.






remember remember

기억해낼 거라는 걸 기억해.


기억나지 않아 차마 다 말하지 못한다고 해도

준비해두고도 열어보이지 못한다고 해도


그래도 괜찮다는 걸 기억해.


악몽을 꿨다고 느꼈을 때조차

그건 악몽이 아니라 단지 이야기일 뿐임을 기억해.


우린 어떤 이야기든 멋지게 만들어 갈 수 있어


Remember it is just a story

even if you feel that it was a nightmare.


You can always turn a terrible nightmare

 into a terrific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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