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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시케 Oct 16. 2021

이상하게  보일까 봐 나를 접는 대신

이상하게 보일 수 있음을 더 감당해보기로 했다.


대학원 입학 결과를 기다리던 시기,


어디론가 함께 향하던 택시 안에서

이미 사회의 어디 한 곳에서 일하고 있던,

그때의 나에게는 반짝반짝 빛나 보이던,

영어 토론 동아리의 언니 오빠들에게

상담 심리학 공부를 하려고 원서를 넣어두었다는 얘기 했었다.



택시 앞에 앉아있던 H 오빠가

갑자기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건 좀 곤란하데' 하는 생각이 얼굴에 쓰여있는 듯했다.


무릎을 쳐서 반사적으로 튀어 오른발처럼

오빠는 거르지 못하고 속의 얘기를 토했다.


"난 네가 좀 의외의 결정을

할 때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건 좀 이상한데?"



그 오빠는 정치적 바람 직성( political correctness)을 의식하는 사람이었고, 특별히 상처주기 위해, 악의를 가지고 나에게 그 말을 한 게 아님을, 그때도 지금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결정' 대신 '다른 결정'이라는 단어를 찾지 못할 정도로, 내 결정이 그렇게 그 오빠를  당황시키는 결정이었던 것인가 싶어 나도 당황하고 말았다.



그는 내게, 내가 구하지 않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어보니 절실하다고 느낀 조언을 '나를 생각해서'해주곤 했다. 그는 나의 몸값이 조금 뒤에는 급 하락할 것을 걱정해주었다. 대학 4학년에 여대 영문과를 다니고 언어 감각이 있다면 그 언어를 더 갈고 연마해  최대한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안정성도 보장된 곳에 취직하는 것이 현명한 것, 하지만 그보다 더 현명한 것은 졸업 전에 XX에 가입해서 사회에서 상정하는 몸값이 떨어지기 전에 나를 귀히 여겨줄 남자를 만나는 것, 이라고 했다.



그것이 정말 나를 생각해서가 아님을, 또 그것이 나에게는 현명한 판단이 아님을, 게다가 나는 그것을 원하지도 않음을 알았기에 나는 별로 혼란스럽지 않았었다. 설령 학교라는 울타리 밖에서 마주한 사회가 정말로 그의 말대로 내 앞에 펼쳐진다고 해도 후회지 않을 자신이 1000퍼센트쯤 있었다.




스물다섯,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싶었지만 적어도 그게 내가 아님은 확신할 수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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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영국으로 와서 초기 한 달을 보내는 동안

나는 내 마음이 어딘지 잔뜩 긴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환경이 새로우니 당연하기도 하지만 뭔가 더 근본적인 불안이 마음에 자리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건 '혹시라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과 맞닿아있었다.




나는 그것을, 새로 알게 된 사람들과 쾌활하고 즐거운 수다를 떨고 나오는 길에 홀로 길을 걸으며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한숨을 통해 느꼈다.



그 모든 행동은 내가 한 것이긴 했으나 온전한 나로서 한 것은 아니었다. 한참 걷다가 신호등 앞에 서서, 생각을 길어 올리고 느낌을 살펴보았다.





신호가 바뀌고 다시 길을 걸으며 나는 시선을 더 앞으로 하고

다리의 감각이 더 가볍게 느껴지는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는데,

이런 마음에 도달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난 어쩌면 평생,

누군가가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긴장하는 마음을

내 몸과 마음에 항상 달고 있었는지 몰라.

그럴까 봐, 그러지 않게 하기 위해,

너무 애쓰며 살아왔는지도 몰라.

너무 애쓰지 말고 이젠 그냥 놓아버리지 뭐.


이상하게 보려면 보라지 뭐.

다른 나라에 온 김에

이상하게 보일 수 있음을 더 감당해보지 뭐."



이 생각의 전환이

모든 삶의 긴장감을 풀어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조금 더 나 자신의 마음과

맞닿는 결정을 내려가며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는데 도움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결정이 나를 만들었다.

그 모든 이상한 결정 속에

가장 나다운 모습이 담겨있다.


가장 나다운 결정은

나를 가장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나를 가장 크게 웃게 했던 일들도 결국

그 모든 이상한 결정 덕분에 얻게 된,

삶의 선물이었다.




이상하게 보일까 봐 나를 접는 대신,

이상하게 보일 것을 감수하며

나를 펼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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