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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시케 Oct 16. 2021

나는 루저 loser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며칠 전에 일이다.

아이 셋이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며

괜스레 경쟁심이 발동하는데,




맨 먼저 올라간 아이(물론 첫째)가 환호한다.



Yeah I am the winner!

(와 내가 이겼다!!)




그다음으로 올라간 아이(물론 둘째)도 기뻐한다.



Yeah I am the winner!

(와, 나도 이겼다!!)





셋째도 나름은 이에 질세라

작은 엉덩이를 씰룩이며 열심히 따라 올라간다.




하지만

6살, 2살씩 많은 오빠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그래도 씩씩 거리며

욕심껏 올라간 셋째가 외친다.

가장 큰 목소리로,




Yeah!! I am the loser!!!!

(와! 난 졌다!! 루저다!!!!)





아, 그 모습이 너무 당당해서

사내아이들과 배꼽 잡고 웃다가

웃음 끝에 깨달았다.




'그래, 저리 살아야지.

위너든 루저든

열심히 올라가 꼭대기에 다다른 뒤

나를 위해 환호해야지.


누가 뭐래도,

내가 한건 멋지다고 하는

셋째의 저 당당한 자기규정의 정신을

내가 다시 물려받아야지. '





오늘은 또 셋째와 둘째가 투닥거리다가

셋째가 또 어떤 규정을 당당하게 돼 치는데

그것이 너무 뻔뻔하고도 기발하여 한참 웃고,

또 웃음 끝에 생각해보게 된다.



무엇 때문인지 셋째와 투닥거리던 둘째가 외쳤다.



Because you are little!!!

You are smaller than me!!


쪼끄만 게 까불지 말란 얘기다.


오빠에게 그 얘기를 들은 셋째는,

잠시 당황하는 듯하나

결국 모두를 당황시키는 말을 하는데..




No,

I, Am, a Big Brother!!!!

I am your Big Brother!!!

(아니야, 내, 가, 오, 빠, 야.

내가 너의 큰 오빠라고!!!)



단어 하나하나에 강세를 주다가

Big Brother에 우레와 같은 외침을!!



너무도 뻔뻔하고 당당하게

또 이토록 자유롭게 자기규정을 넘나드는

셋째의 자기규정에 또 한참 웃었다.


여동생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은 둘째 오빠도

처음엔 기가 막혀하다가 결국엔 웃고 만다.



웃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넌 누구야.'

'넌 어떤 아이야.'


이런 말이 아무리 달콤하고 다정해도,

또 빼도 박도 못하게 확실하게 느껴져도,



나에 대한, 나를 위한

자기규정을 해나갈 사람은

'나'라는 것을


결국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셋째가 지금 이 삼십 개월 꼬마의 패기로 ,

이런 위풍당당 자기규정의 정신을

쭉 밀고 나갔으면 했다.




밤이 되고

이따금씩 여전히 젖병을 달라하는 셋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Now you are a big girl,

not a baby anymore."


(자, 이젠 아기 아니잖아.

아기만 젖병 무는 거야.)



오, 그런데 아니란다


No mummy,

I am your baby!

Your teeny teeny baby!


(아냐 엄마,

난 엄마의 작고 작은 아기 맞아)



작디작은 아기에게

오늘만이라도 젖병을 다시 달라고

내 속으로 파고 들어와 온갖 애교를 부리는데


아.. 이조차 또 너무 뻔뻔해서

홀딱 넘어갈 뻔했다.



'아이를 기르고 가르치는 자', 라는 나의 엄마 규정은

이렇게  흐물흐물해지고

반전,  의 반전을 거듭하며 진화해간다



아이들이 나를 기르고

나는 아이들로부터 배운다.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한 명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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