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부재와 실재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간다.
누군가의 실재를 통해 우리에게 없었던 것, 그러나 애타게 찾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비로소 구체적으로 실감한다. 이런 구체적인 욕망과 그리움의 지도는 너무 강렬하고 선명해서 우리의 온 존재를 흔들고, 우리는 실재를 통한 부재에, 또 이를 통해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부재를 통한 실재에 두려움을 느낀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야 내가 그토록 사랑에 목마른 삶을 외롭게 견뎌왔음을 무섭도록 떨리게 알게 되듯, 누군가의 사랑을 잃게 되거나 잃을 위기에 와서야 내가 그토록 이 사랑에 내 모든 것을 걸쳐왔음을 슬픔과 불안 가운데 실감하게 된다.
하여 이별은 한 존재의 부재와 실재를 동시에 통감하는 삶의 가장 큰 사건이자 사고가 된다. 그의 실재를 통해 채워나간 구체적인 일상의 계획 와 희망들은 이제 물거품이 되고 내 삶은 이제 그 구체성을 박탈당한, 모호하고 비극적인 추상화가 된다. 그의 부재는 무엇이 우리의 일상을 지탱해주었는가를 비로소 증명한다. 그의 부재는, 그의 실재에, 그 부피와 밀도와 압도감에, 우리를 가차 없이 짓눌리게 한다.
산산이 부서지고 철저히 무너져내리는 가녀린 마음의 진동을 지켜보며 우리는 사랑했음을, 사랑했으므로 아파지게 됨을, 내 마음을 누군가의 실존에 이토록 깊이 걸쳐놓았음을, 내가 결코 혼자일 수 없었음을, 너와 나의 강렬한 연결성을, 실감한다. 통과한다. 앓는다.
그의 부재로 찬란히 빛나던 삶이 빛을 잃고 내 마음은 조각조각 분열되고 부서진다. 그 마음을 안고 우리는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는가, 조각난 마음을 대체 무엇으로 이어 붙이는가,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에 찔려 숨 쉴 때마다 통증을 느낀다.
두 손을 뻗어 무엇이든 잡아보려 하지만 허공 위에 버둥대는 산란한 마음의 파편들 뿐, 우리는 그의 실재 후 일어나는 부재를, 부재를 통한 실재를 결코 아무렇지 않은 듯 감당할 수 없다. 만남으로 이미 다른 시간의 차원에 진입했던 우리는 다시 그를 알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의 실재 이전에 과연 나의 시간이라는 것이 따로 있었는가도 이제는 의심스럽다.
허망한 마음을 부여잡고 때론 아무 일도 아닌 듯 웃어보고 또 때론 온 세상이 끝난 듯 울어보고 아무나 붙잡고 무너진 내 마음의 강둑과 범람하는 감정을 말하고 토로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침묵의 시간을 홀로 감당하게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언어로도 속시원히 설명할 수 없고 그가 아니고는 정확히 이해할 수도, 이해받아도 소용없는 아득한 거리감을 통감하며 입을 다문다.
어쩌겠는가,
그런 시간을 견디고 또 견디다 보면, 그렇게 어떻게든 나를 붙잡아주는 삶의 또 다른 그물망들에 내 마음을 걸쳐 놓으려 애쓰다 보면, 그러면 그렇게 누군가의 부재와 실재를 가슴에 묻은 채 그렇게 앞으로 또 앞으로 갈 수 있음을, 믿어야지. 믿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아니,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