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향은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
마감이 다가오면 또 쓸거리를 찾아서 헤매는 하이에나가 되는 기분이 듭니다.
제가 사는 부산은 지난주 황사가 너무 심해서 마침내 외출을 하려고 마음먹었던 저에게 시련을 주었지만
그 어떤 핑계보다 그저 집에서 지내는 게 편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쓴 여행총정리는 조만간 업로드하기로 하고
이번 여행에서 만난 남자 시리즈는 방콕에서 만난
러시아 친구 이야기를 올릴까 합니다. 이번 여행에
가장 마지막에 만난 이도 그러고 보니 그였네요.
이래 저래 신세를 많이 져서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서 이 글을 올립니다.
이번 여행은 라오스 태국 베트남 3개국이지만 도시는 꽤 많았고 그중 방콕은 앞서 언급한 대로 3~4번 오가며 여행했기에 기점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와 만난 건 방콕 떠나기 거의 마지막 즈음에 만났고 그리고 다른 곳을 여행한 뒤에 다시 방콕으로 갈지 미처 몰랐기에 또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와는 처음부터 아주 늦은 시간 만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일이 늦게 끝나기도 했고 저 역시 나름의 일정이
있어서 그리고 늦게 만나도 방콕의 밤은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어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그는 저를 야간에 더 빛을 발하는 꽃시장에 데려갔습니다.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꽃시장을 좋아하는 저로선
전부터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수상택시를 탈 때도 그저 스쳐 지난 곳이라 좋은 기회라 여겨졌고 막상 간 그곳은 기대와는 조금 다른 곳이었지만 충분히 아름다웠고 연꽃을 비롯하여 신에게 바치는 금잔화라든가
제가 좋아하는 장미, 작약 등 다양한 꽃들이 저에게
손짓을 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이쁜 꽃들이 많아서 어디에 포커스를 맞춰야 하나 하다가 그에게 이왕 이렇게 왔는데 조심스레
꽃을 사주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골라보라고
하기에 몇 군데 둘러보다가 하나를 골랐는데 지나가다
또 이쁜 장미가 있어서 아.. 이 아이들이 더 이쁘네 하니 그가 그럼 한 다발 더 사면되지. 하기에 의도치 않게
그것도 비슷한 컬러로 장미를 두 다발이나 선물 받게 된 것입니다.
옆구리를 찔러서 받은 것이긴 했지만 정말 그러려고
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내미는 그가 좋았습니다.
그라는 사람이 좋고 우리의 합이 좋다 이런 거보다는 그 순간의 모먼트가 물 흐르듯 흘러서 더 기억에 남는다랄까요?
커다란 슈퍼로즈 두 다발을 안고서 그가 데려간 건
바로 근처 왓 아룬이 보이는 피어였습니다.
평소에도 왓아룬에 가는 거보다 건너편이나 앞에서
보기를 더 좋아하는 저로서는
밤의 왓아룬은 처음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집이기도 한 곳이었지만 조심스레 왓아룬
건너편 선착장에서 꽃 향기에 취해서 야경과 함께
짜오프라야강의 일렁이는 물결 그리고 바람을 느끼며 한참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또 저의 숙제를 하나 해결하기로
합니다. 그건 바로 MOCA 방콕현대미술관에 가는 것인데 전부터 꼭 한 번 가보고 싶었지만 돈무앙공항에서 가깝고 뭔가 도심에서는 가려면 먼 듯하여 잘 가지지 않던 곳이었는데 그도 간지 한참이 되었다며 같이 가자고 하여 오랜 숙원을 해결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는 평소 바이크로 이동을 주로 하는 이이지만 이 날은 근처에 바이크 세워두고 택시로 갔습니다.
약간의 기대를 품고 간 MOCA는 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입구부터도 너무나 맘에 들었고, 소장품 전 뿐이었지만 전시도 나름 좋았습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좀 더 체계적인 큐레이션이 되었다라면 하는 정도인데
공간이 좋아서 인지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고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전시를 한참 즐겼습니다.
그리고 커피를 좋아하는
저에게 (그에게 있어서) 방콕에서 제일 맛있다 생각한다는 카페를 데려가주었습니다.
카페타임을 즐기고 제가 가고 싶어 하던 재즈 클럽에 바래다주고 짧은 만남에 대한 안녕을 합니다. 이날은 제가 심야기차를 타고 치앙마이 가는 날이었기에
다음에 또 보자는 상투적 인사를 하고 마지막 허그를 합니다.
혼자 남아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에서 방콕 마지막(?) 밤이라 여기고 재즈를 듣다가 기차를 타러 갔습니다.
그리고 어제 그 장미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치앙마이까지 데려가기로 합니다.
침대칸에 나를 누일 작은 슬리퍼스 공간에도 그 장미다발을 가져갔는데 밤사이 은은하게 저를 지켜주던 그
향기가 아직도 기분을 말랑하게 합니다.
누군가에게 받은 선의를 그냥 마음만 받는 게 아니라 그 아이들까지 소소한 짐들이 많았지만 다 챙겨서 가져가고 나중에 숙소를 옮길 때도 한참을 가지고 다니면서 화병에 물컵에 꽂아두면서 고마움을 떠올렸습니다.
여행 중 자주는 아니어도 그때 즐거웠다며 소식을 전해왔고 제가 다시 방콕에 갔을 때도 연락이 닿아서 그와 선데이 브런치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
에그 베네딕트를 먹으러 갔는데 전에 받은 선의도 있고하여 제가 사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그는 '너는 지금 일하지 않고 여행 중이잖아' 그러면서 사주었습니다. 정말 제가 사주고 싶었는데 다음에 만날기회가 있으면 꼭 뭔가 보답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콕에서는 그의 일정이 바빠서 브런치밖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언제 또 기회가 닿는다면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 역시 장기 여행을
앞두고 있다고 들어서 그의 여정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일상에서라면 조금 다르게 펼쳐질 수 있는 순간들이 어쩌면 여행지라서 조금 더 로맨틱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그런 하루하루가 있기에 우리는 또 여행을 꿈꿉니다.
하얀 장미 다발의 은은한 내음이 아직도 기억나서
플로랄 테라피가 저절로 되는 듯한 이 기분을 전하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제가 아는 그 향기를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여러분에게도 어떤 작은 무언가가 하나의 신호로 혹은 하나의 손짓으로 작은 파장을 만들어내는 어떤 것을
알고 계신가요? 어쩌면 그 작은 디테일이 우리의 인생을 일상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저는 그리 믿고 있는데 어떠신가요?
누군가에게 그런 선의를, 작은 꽃향기 같은 기분을
전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