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ais Ku Jun 21. 2023

내 인생은 지금 어쩌면 타악기 연주자처럼...

인생은 음악처럼

내 인생은 지금 어쩌면 타악기 연주자처럼...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갔다.

최애 지휘자가 마지막 지휘를 하는 날이라 마침 타이틀도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이다.






말러의 9번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인데,

그의 임기 마지막을 기념하는 것이기도

하고. 꼭 오케스트라 연주로 내 눈앞에서

나의 자랑스러운 도시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것으로 들어보고 싶은 곡이었는데

좋은 기회로 다녀왔다.


미리 예매를 하지 않아서 당일 연주 시간

임박하여 가니 2층 중간 좌석과 맨 구석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지휘자의 현란한 손동작을 보기 위해서 간 것이기도 해서 평소보다 만원 비싸지만

2층 중간 C열 3번째 자리에서 보는 것을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얼마 전 본 지브리 공연에서 인상에 남았던 곡도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중심이 된 곡이었는데 이 날 말러의 공연에서도 여느 공연과 달리 플루트와 하프 등 현악기가 아닌

다른 악기에 유독 관심이 갔다.


평소 말러의 5번은 좋아해서 _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나 헤어질 결심 등에도 쓰여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 곡은 가끔 듣는 편이지만.

이번 마지막 교향곡 말러의 9번 교향곡은 잘 들을 수 있는 곡도 쉬운 곡도 아니라서 쉬이 들을 기회가 많은 곡도 않은 데다

어려워서일까?

자꾸 공연 중 다른 생각으로 잠시 빠지기

좋은 곡이었다.


잠깐잠깐 사색에 빠지기 좋은 곡.


말러 인생의 마지막에 쓴 곡으로 이별을

상징하고 그의 슬픈 가족사와 여러 도시를 돌면서 쌓인 스트레스와 병, 여러 가지들이 점철되면서 나오게 된 곡으로

이태리 돌로미티를 여행 중에 쓴 곡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 이태리 여행을 3개월 정도 하면서

돌로미티와 베니스를 꼭 가려고 했지만

가지 못한 아쉬움을 이 곡을 통해서

그곳에의 그리움을

아스라하게 느껴보다가 드문드문

나의 최근 근황과 맞대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오케스트라 맨 뒤의 타악기 연주자들 4명 정도가 심벌즈, 북 등 대형 타악기를 돌아가면서 연주했다.


불현듯 그들의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분명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지만

지금 시기의 나는 뭐랄까?

완연한 주역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않는 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나?


약간은 뒤걸음질 치면서

약간은 중심에서 멀리에 자리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긴 인생에서 이런 느낌은 누구나가 한 번쯤은 받을 수 있고 약간의 주류에서 벗어나서 인생을 관망하는 시기가 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또래의 주변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노선의 삶을 살고 있어서인지.

남들이 선택한 인생에서의 큰 중대사를

아직 선택하지 않은 나로서는 남들보다

약간은 삶을 돌아볼 시간이나 여유가 많아서인지 종종 이런 생각에 빠지곤 하는데,


아직 결혼이나 출산 등을 선택하지 않지

않은 것에 대해서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혼주의자로 자신을 명명한 것도 아니기에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여러 것에서 뭔가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알지 못할 불안감이 스멀스멀 엄습해 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약간은 메인 스트림에서 벗어난 채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오케스트라

맨 뒷줄의 타악기 연주자처럼 여겨진 건

왠지 주인공처럼 여겨지는 바이올린이나 첼로의 연주처럼 교향악이 연주되는 내내 집중하며 현을 켜야 하는 현악기 연주자와 달리 인생 전체에의 태도는 분명 신경 쓰고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내내 연주하는 게 아니라 관망하며 지켜보는 시간이 조금 더 긴 그들이 어쩌면 나의 삶의 태도와 닮아있는 건

아닌가 하고 느낀 것이다.






물론 타악기 연주자들도 90분 교향곡 내내 최대한 집중해야만 몇 되지 않는 나서야 할 때를 제대로 알고 연주를 할 수 있는 건 분명하고 또한 뒷음의 여운까지 잡아줘야 하는 섬세함 마저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 역시 뭔가 인생의 당연한 프로세스에서 조금은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집중해서 인생을 대하고 있고

특히 사랑에 관해서는 집요할 정도로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려 하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삶을 이끌어가는 데에 최선을 노력을 하려 한다.


하지만 인생의 인연이라는 것은 어쩌면

내가 생각한 거보다 조금은 더 복잡하고

어려워서 내 생각대로 쉬이 흘러가지만은 않는 것이기에 더 간절하다.

그러기에 관계에 대한 소중함이나

정작 나서야 할 차례에 대한

준비를 더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글을 쓰면서 그림이 그려지는 미래는

현실에서 좀 더 충실하고 내밀한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타악기 연주자에서

조금은 나아져

좋아하는 현악기의 자리로의 이동도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예전에는 전혀 부럽지 않던 연예인 커플의 결혼 리얼리티 관찰 프로그램이라던지,

훈훈한 남녀의 설렘을 다룬 방송이라던지 이런 방송 보는 것이 예사롭지 않은

요즘이다.


예전이라면 뭐야? 또 나와서 자랑질이야? 하고 채널을 돌렸을 텐데 찬찬히 둘러보며 나도 이쁘게 살 날 오겠지? 하고 괜스레

희망찬 미래를 꿈꿔본다.


그저 그런 감정과는 조금 다른 흐름으로

여겨지는 요즘. 이런 상태가 싫지 않다.








아마 올해에는 좋은 만남들이 이어져서

바라는 책의 출간이라던지,

영화 제작의 물꼬를 틀 수 있는 한 해의

시작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듯하다.


거기에 오랜 바람의 장기해외체류라던지. 다양한 방식과 채널로

삶의 길을 열어두려고 한다.


오케스트라의 타악기 연주자도 물론 좋지만 메인에서 지휘를 한다던지, 현악기 솔로를 연주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죽을 때까지 다 볼 수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