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일곱 번째 이야기 -
당신의 아침은 무엇으로 시작되는가.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일단 커피나 차를 마셔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던가, 아침식사는 항상 밥에 된장찌개 라든가, 토스트 라든가, 이렇게 항상 무언가 하나로 고정되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때그때마다 장소와 나라와 상황과 시간에 따라 메뉴가 계속 바뀌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종족으로, 어딜 가도 그곳에 잘 적응해서 사는 거 같다. 한국에 살 때에는 일곱 살 때 엄마가 일본에서 1년 정도 일 관계로 공부하시고 돌아오신 뒤로 토스트와 스팸과 계란을 먹는 영국식 아침식사로 돌연 바뀌었었는데, 그게 싫어서 전기밥솥의 쌀밥과 어제저녁에 남은 된장국과 반찬들을 혼자 꺼내 먹곤 했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살았을 때에는 올리브 오일을 잔뜩 뿌리고, 토마토소스를 갉은 것을 올린 토스트를 오렌지 주스와 Cafe con Leche라고 커피에 우유를 부은 것과 곁들여 먹었었다. 그런데 비해, 포르투갈에 살게 될 때면, 자연히 토스트에 치즈와 햄을 넣어 겉에 버터를 살짝 발라 눌러 굽는 Tosta Mista와 오렌지 주스나 홍차를 즐겨 먹는다.
이탈리아에 살 때면, 보통 느긋한 아침식사를 카페에서 할 경우엔 두유를 넣은 카푸치노에 노란 크림으로 속을 채운 브리오쉬 Briosche를 선호한다. (우리나라에선 일명 크로와상이라 불리지만, 이탈리아에선 브리오쉬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도 일찍이 스타벅스에서 두유를 곁들인 커피들이 선보였는데, 유럽에서도 소우유 보다 베간 우유 열풍이 꽤 강하다. 이탈리아는 남부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들지만, 밀라노를 포함한 롬바르디아 지방(Lombardia)과 대도시들에서는 어느 카페를 가도 쉽게 두유를 곁들인 커피를 주문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탈리아를 떠나면 항상 아쉬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커피일 것이다. 질 좋은 커피로 괜찮은 바리스타가 두유로 낸 푹신하고 부드러운 크림을 얹어서 내어주는 카푸치노, 식후의 속이 더부룩할 때 찾게 되는 설탕 없이도 쓰고 달콤하고, 진한 커피의 맛과 향이 전해지는 에스프레소, 나른하게 잠이 오는 오후에 살짝 마시고 싶은 에스프레소에 아주 살짝 두유 크림을 얹은 카페 마끼아또까지. 어떻게 마시고 싶은지에 따라 멋진 요술사처럼 내 마음에 쏙 들게 만들어주는 멋진 바리스타가 있는 카페들.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까탈스럽게까지 기피하는 건 아니지만(피자 위에 토핑 된 모자렐라는 먹으니까. 와인 안주로 갖은 종류의 치즈를 맛볼 수 있게 한 접시에 온갖 종류의 치즈가 들려 나올 때도 손은 바쁘게 움직이니까.) 그래도 두유를 곁들인 커피에 나는 이미 너무 익숙해져 버린 지 오래다. 또한, 유럽은 우유 선택의 폭도 넓다. 쌀 우유, 귀리 우유, 두유, 아몬드 우유, 도토리 우유 등등 많은 종류의 우유들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원체 집에서 아이들과 여러 종류의 다양한 우유들을 섞어 마시는지라, 커피도 집에서 이것저것 넣어서 마셔보았는데, 역시 왜 카페에는 두유로만 커피를 만드는지 알 것도 같았다. 다른 종류의 우유들은 너무 달아서 커피에 넣었다간 본연의 커피의 맛과 향이 가려지기 쉬웠다.
집 근처 도서관 근처의 Ti Amo Caffè 카페는 나의 단골 카페 중 하나이다. 이탈리아에 온 첫해는 2달 동안 며칠을 제외하고는 비가 주룩주룩 잘도 내렸었다. 세비야의 강렬한 태양에 익숙히 살아오던 내가 몇 달 동안 뿌옇게 먹구름들로 뒤덮인 하늘 아래서 지내며 기분이 다운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편 또한, 제 아무리 자기 고향인들, 14년 만에 돌아온 이탈리아의 첫 치례는, 당장이라도 다시 스페인으로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나게 했었다. 그렇게 날씨는 사람을 지배한다. 언어도 스페인어를 멘땅에 헤딩하듯 배워 이제 겨우 좀 사람답게 살아가는가 싶었는데, 이탈리아어도 알파벳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그것도 8개월 된 첫째 아들을 데리고 말이다. 슈퍼에 가서도 아무 말 못 하는 벙어리 신세가 다시 되어버리다니.... 이제 좀 탈출한 줄 알았건만.... 이런 방황하는 나의 온데 갈데없는 마음의 안식처는 바로 이 Ti Amo Caffè였다. 한국에서도 카페란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막히면 혼자서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시켜놓고 이런저런 책들과 잡지들, 음악들을 들으며 여러 가지 얽히섥히 엉킨 생각들을 다이어리에 받아 적고 드로잉도 하면서 지내는 아이디어 창고 아지트와 같은 곳이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아이디어 창고 아지트와도 같은 옛날 홍대 카페들과도 좀 흡사한 분위기랄까? 보통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카페란 그 자리에 서서 괜찮은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는 바로 자리를 뜨는 곳이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신문이나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편안하게 앉아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들이 꽤 많아졌다.
이 Ti Amo Caffè 는 천장이 아주 높고 꽤 넓은 공간을 회색으로 칠하고 바닥은 나무로 깔고, 가구들은 주인의 아버지가 엔틱 가구를 만드시기에, 그분에게서 공수해 온 멋들어진 테이블들이 즐비하다. 또한 케이크와 비스킷, 아이스크림 등을 직접 만드는 넓은 작업 공간이 넓은 유리창으로 보여져, 손수 만들어지는 과정 또한 볼 수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카푸치노에 크림이 가득 들어간 브리오쉬, 혹은 홈메이드식 케이크와 함께 편안한 가죽 소파나 엔틱 나무 의자에 몸을 기대어 좋아하는 재즈 음악들을 듣고 있으면, 날씨가 좀 흐리거나 추워도, 그 공간 안에서 만큼은 잊고 있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렇게 궂은 날씨와 여러 가지 답답한 일상 속에서도 나를 5년 넘게 이탈리아에서 지낼 수 있게 해 준 원천 중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도서관과도 아주 가까워 아이들과 도서관에 들린 때면 간식을 먹으러 꼭 들리곤 했었다. 도서관에서 한가득 빌려온 책들을 읽으며 즐기는 맛난 간식과 편안하게 바닥에 앉아서도 볼 수 있는 몇몇의 낮은 높이의 테이블들은 우리의 명당이 곤 했었다. 이미 도서관에서 1-2시간을 보내고 와서도 이곳에 오면 또 빌려온 책들을 읽느라 자리를 뜨기가 힘들 때가 많았다. 첫째 아들은 책 보는걸 정말 즐기기에, 한번 시작한 책은 끝을 보아야만 되는 성질이다. 이런 아들이 만 3살 반에 읽어 달라며 가져온 책은 무려 250페이지가 되는 두터운 책이었다. 물론 그림들도 꽤 많이 들어가 있었으나, 그 당시 나의 이탈리아 실력으로는 동시통역해주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책이었다.(내가 책을 읽어 줄 때에는 이탈리아 책이어도 한국어로 동시통역을 해서라도 한국어로 읽어주는 걸 고집했고, 만 3살 되기 전까지는 그래도 동시통역해줄 수 있을 정도의 글밥의 책이었다.) 다행히 그림들의 설명이 꽤 잘 되어있어서 그림의 도움을 받아서 열심히 대충대충 읽어주는대도 1시간이 넘었었다. 아이가 가져온 이 책은 "제로니모의 환상의 세계"시리즈로, 두 친구가 만나서 환상의 세계를 여행하는 이야기로 마지막에 모든 탐험이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나의 아들은 너무 마음이 아파서 울어 버렸다. 왜 헤어지냐고,,, 어떻게 다시 보냐며,,,,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나의 아들에 놀라서 카페 주인들도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곤 했었다. 나는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 황급히 마지막 장을 넘기며, 여기 보라고, 다시 만나기 위해서 편지 쓰는 거 보이냐고,,,,설명을 늘어놓으며 우는 아들을 달랬다. 하지만 너무도 마음이 아팠는지 거진 1년 동안 이 시리즈의 책들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물론, 이 곳은 처음으로 나의 부모님들이 이탈리아에 딸내미와 사위와 손자를 보기 위해 오셨을 때에도 모시고 갔었던 곳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나와 남편의 결혼식을 위해서 해외에서부터 찾아와 주었을 때에도 아침식사를 하러 꼭 갔었던 곳이었다. 이렇게 누군가가 나를 보러 이탈리아에 오면 꼭 함께 하고 싶은 장소 중에 하나였다. 내가 편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곳이니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에게도 내가 경험한 이 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었다. 이렇게 이 곳은 내가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한 은밀한 장소이기도 했지만, 나와 나의 가족들이, 나의 친구들이 즐겨 찾아가 맛난 케이크이나 아이스크림과 커피와 함께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채워갔던 장소이기도 했다. 장소는 이렇게 지나간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을 묻혀가며 더욱더 의미 깊어지는 것 같다. 내가 함께 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온 시간들이 그곳에 묻어 있다.
이제 우리들은 바다가 훤히 보이는 테라스에서 하는 포르투갈식 아침식사인 Tosta Mista를 하기 위해서 포르투갈에서의 단골 카페인 Fortaleza로 발을 옮긴다. 삶은 계속되고, 우리 인생의 여행도 계속 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