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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Mar 05. 2019

아이들에게 멋진 환상의 날개를 달아주는 너는, 도서관

#008 여덟 번째 이야기

어릴 적부터 운이 좋게도 나는 도서관에서 가까운 곳에 살았다. 도서관이란 곳은 나에게 보물섬에 숨겨져 있는 보물상자를 찾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가졌었다. 책장 사이사이, 어딘가에 있을 보물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파헤쳐 다니고, 그 어딘가에서 멈춰 발도 못 움직이고 그냥 그 자리에 엉덩이 붙이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책이 다 끝날 때까지 책에 코를 박고 있기도 했다. 어떨 때에는 그냥 책들이 조용히 살아 숨 쉬는 이 신성한 정신적 신전을 그냥 숭배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에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어려운 두께가 7센티는 되는 3권짜리 현대 미학 책을 읽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한나절씩 엉덩이 붙이고 있기도 했었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는 걸 바라보고 있으면, 혼자서 보든, 친구들이랑 보든, 부모님이든 누군가와 함께 보든, 아이들의 등 뒤에는 보이지 않는 날개가 돋아나고, 이들의 눈은 이미 환상의, 상상의 시간 여행을 떠나 꿈꾸듯 영롱해지고 빛이 난다. 이 빛나는 눈빛 때문에 간혹, 정말 피곤한 늦은 밤에도 자기 전에 꼭 책을 읽어야지만 잠이 드는 나의 아이들에게 졸린 눈을 비비면서까지 책을 읽어줄 수밖에 없는 나는 한없이 마음 약한 엄마다.


첫아들을 임신했을 때부터 가장 큰 꿈 중 하나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책을 통해 더 확장된 세상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흑백의 초점책을 한국에서부터 공수해오는 수선을 떨기도 했었고, 나의 이탈리안 남편은 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었다. (유아 용품의 질과 다양성은 한국에 엄지 손가락을 자신 있게 들 수 있다.) 태어나서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처음으로 아이에게 책을 보여 주었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아기한테 책을 읽어주겠다고?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아기한테 무슨 책? 아무리 말로 설명해줘도 안 믿고 안 듣던 나의 이탈리안 남편은 책을 보여주자마자 책에 눈을 고정하고 집중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자신이 한 말을 모두 취소했다. 그렇게 나의 첫아들은 책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다.


항상 여기저기서 사는 우리의 삶의 패턴은 절대 짐을 많이 늘려선 안된다. 그럼으로써 자연히 옷이라든가, 가방, 신발 등은 싹 정리가 되었다. 장난감들도 여느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하면 1/10 정도라고 할만치 빈약하다. 하지만 책에 대한 욕심은 정말 버리기 힘든 것 같다. 놔두고 가려니, 그때그때마다 그 나이에 맞는, 흥미로워하는 책들이 달라 짐가방에 안 넣을 수가 없고, 넣고 보면 짐가방은 가방이 아니라, 무슨 쇳덩이 마냥 끌고 가기도 힘들어졌다. 또한 남편이 일하는 기간 동안에 머물던 스페인의 여름 집 근처에는 제대로 된 도서관이 집 근처에 없었기에 내가 알아서 챙겨야 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뭔가 필요한 거 없냐고 하면 나는 책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던 여자였다.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내의 연령이 낮은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성의 구조를 갖춘 공간 (왼쪽), 자연 채광을 중시한 천장 건축 디자인 (오른쪽)


그런 우리가 이탈리아에 돌아오면 친정집에 드나들듯, 그렇게 즐겨 가는 곳이 바로 집 근처의 도서관일 게다. 여기 도서관은 근처의 여느 도서관에 비해서도 건축적 디자인 면에서나, 규모면에서나, 장서, 새로운 책들이 들어오는 빈도수, 아이들을 위한 연극, 뮤지컬 공연, 전시 활동 등이 아주 활발하며, 어른들을 위한 문화적, 예술적 지식을 충족시켜주는 여러 강연들이 열리고, 주변의 도서관들과의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있어서 여기 도서관에 없는 책들도 요청하면 다른 도서관에서 가져다주는 서비스까지 마련되어 있다.


특히 어린이를 위한 공간 안에서도 조금 더 어린아이들을 위해 멋진 성으로 지어진 작은 공간이, 닫히지 않으면서도 주변에 의해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게끔 만들어서, 편안하게 아이들이 그곳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볼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다. 나의 첫째 아들은 이곳에서 마법의 성에 발을 들이는 그 순간부터 유니콘을 타고 책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것, 최근에 흥미로워하는 주제들, 다큐멘터리에서 본 이야기나 다른 나라 이야기들, 여행 다녀온 곳이나 다녀올 곳에 대한 문화적 정보, 광물,동물들, 기계, 첨단 기술들, 예술가들 등등을 함께 찾아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이 환상의 여행은 도서관에서 집으로, 숲으로, 바다로, 전시장으로, 박물관으로, 다른 나라로, 더 넓은 세상으로의 여행으로 이어진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숲 속 유치원에는 양들이 두 마리 살고 있었다. 흰 양은 모모 Momo, 검은 양은 살비아 Salvia라고 부른다. 이들은 철창에 가두어져 있는 게 아니라 숲 속 유치원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풀어져 있다. 그럼으로써 아이들이 원하면 쓰다듬을 수도 있고, 먹을 것을 직접 줄 수고 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양들과 함께 공간을 공유한다. 그러던 중 올 겨울 끝자락에 임신한 양들 두 마리가 아기를 낳기 위해 숲 속 유치원에서 몇 주간 지냈다. 그리고 이 양들에게서 작은 생명들이 태어났다. 이렇게 귀중한 경험들을 옆에서 바라보는 과정 속에 우리는 도서관에 가서 세상의 모든 동물들의 엄마들과 아기들을 주제로 담은 책을 찾아서 함께 보았다. 특히, 둘째 딸은 요즈음 자신이 어디에서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를 듣는 걸 좋아하고,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던 터라, 아주 진귀한 경험이었다. 첫째 아들 또한 만 2살 반에서 3살 되어 갈 즈음에 몸에 대해서, 뼈에 대해서 꽤 많은 관심을 가져 의학적, 과학적인 접근방식으로 된 책들을 많이 보았었다. 그에 비해, 둘째 딸은 오히려 서술적이고 이야기로 풀어놓는 방식의 책에 더 흥미를 가졌다. 이렇게 같은 주제를 가지고도 아이들이 선택하는 책은 천지 차이다.  


숲 속 유치원에서 태어난 아기양과 엄마 양 (왼쪽), 함께 공간을 공유하는 양과 아이들. 걸어가는 아기양과 낮잠 자고 있는 Enea (오른쪽)


또 한 예로는, 우연히 보게 돤 피카소의 작품집에서 케르니카를 그리기 위한 드로잉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노타우르스 Minotauro의 드로잉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때마침 아이들이 그리스 신화에 관심을 가지던 차에 꽤 좋은 연결점이 되었었다. 그에 더불어 타이밍이 잘 맞아, 밀라노에서 피카소의 미노타우르스를 비롯한 신화와 관련된 드로잉, 유화, 조각 작품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던지라 모두가 함께 전시를 보러 갈 수 있었다. 한창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에 관심이 많던 둘째 딸 가이아는 르니카를 그리기 위한 드로잉에서 한 엄마가 죽은 아기를 껴안고 절규하는 모습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신의 흥미에서부터 시작해 점점 더 넓은 세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체험해가며 알아간다.


피카소 전시 Picasso Metamorfosi, Palazzo Reale Milano, Milan, Italy

그런가 하면, 내가 평소에 아주 좋아하던 영국의 스트리트 아티스트 street artist인 Banksy 책자를 우연히 보고, 아이들이 흥미로워하던 차, 밀라노에서 열리던 그의 전시를 함께 보러 갈 수 있었다. 물론, 스트리트 아티스트 street artist 작품들을 갤러리 안에서 감상한다는 게 아이러니 하지만, 거진 20년을 존경하던 아티스트인지라, 그냥 눈 질끈 감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었다. 이 전시를 보고 나서 우리는 전쟁, 무기, 소비 사회, 대량 생산, 거리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거리에서 스트리트 아티스트들 street artists의 작품들을 눈여겨보게 되었고, Banksy의 작품 포스트만 보아도 "Banksy다!!!" 하고 소리치는 아이들이 되었다.


Banksy 전시를 보고 와서 화집을 끄집어내 와서 꽃다발을 던시는 사나이를 그리기 시작하는 첫째 아들 율
전시에서 아이들이 마음에 들어한 작품들


한 달에 2번씩은 아이들을 위한 연극이나 책을 읽어주기라기보다, 보여주기에 가깝게 아이들이 쉽게 책에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활동들이 진행되어, 온 가족이 함께 주말을 도서관에서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도서관은 그냥 책을 빌려가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거나 부모님의 품에 안기어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가족이 함께 소통하는 정신적 장소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렇게 도서관은 아이들을 책을 통해서 세상을 연결해주고, 더 넓은 세상을 발견하게 해 주고, 그 넓은 세상으로 걸어 나가게끔 도와준다.


아주 어린 만 1세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다양한 문화 강좌 활동들이 이뤄진다.

  

아직도 내겐 소박한 꿈 하나가 있다. 언젠가 아이들이 조금 더 커서 자신의 책들을 도서관에서 각자 스스로 고르고 돌아와서 한나절 자신들이 고른 책들을 읽고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이 읽고 있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서로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서로가 경험한 것을 가족이 함께 나눌 수 있게 되며,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 대중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훈련을 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 일석 사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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