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스무번째 이야기
시아버님의 건강 악화로 갑자기 이탈리아(밀라노)에 다녀오고 얼마 안 되어, 이탈리아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들이 속속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름 시즌 일이 시작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시아버님을 다시 한번 뵙고 오려고 했었으나 3월 9일 자로 모든 이탈리아 항공편들이 끊어지고, 이탈리아는 자채 봉쇄를 하였다. 그럼으로써, 이탈리아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우리는 갈 수가 없게 되는 황당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4일 뒤, 이탈리아에 있는 우리들의 친구의 어머니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미 연세가 있으시긴 했지만, 사인이 코로나 바이러스였기에, 격리 치료를 받으시고,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혼자서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셨다는 이야기와 이탈리아에선 아직도 흔치 않은 화장이 바로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새해 연말 파티 때 마지막으로 본 그 친구와 발콘에서 폭죽들이 터지는 것을 한참을 바라보며 한 달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나간 우리들의 오래된 친구이자 그녀의 남편과 그보다 한 달 더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나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었었건만. 그런 그녀에게 사랑하는 또 한 사람을 잃어버린 상실감이 얼마나 클지를 생각하면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될 거란 걸 안다. 그냥 곁에서 손 마주 잡고 그녀겯에 있어 줄 수 없는 게 마음 아프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공공 기관들이 문을 닫고, 회사들이 문을 닫고, 가게들과 레스토랑, 카페들이 속속들이 문을 닫고, 우리들은 집 속 안에 갇혀서 자체 격리를 하게 되었다. 처음 중국에서 들려오는 뉴스에서는 무슨 문등병 환자들을 내몰듯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들을 집안에 가두어 버리거나, 한국의 잘 짜여진 통신망으로 사생활이 속속들이 파해쳐져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권침해에 머리가 아찔했었다. 그러다 뒤늦게 이탈리아에서 하루에도 약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니,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한국만치 발달되지 않은 이곳의 의료시설이 그나마 마비되지 않게 하려면 개개인 하나하나가 협조해 주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또한, 가까운 사람들의 어려운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어떤 이는 100명을 직원으로 거느리는 청소 회사로, 아무도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업체들에서 일거리는 들어오지 않고, 이번 달 100명의 직원들에게 줄 월급을 걱정했다. 밀라노 중심가에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는 친구는 더 이상 집에도 가지 못하고(자채 격리로 인해, 거리를 나다닐 수가 없게 됨으로) 레스토랑에서 한 달가량 먹고 자면서 레스토랑 임대료를 메꾸기 위해서 Take out으로 최소 연명을 하면서 이 위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정원이 없는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집안에 꼼짝없이 갇혀서 발콘에서 바깥공기를 마시며 끊이지 않는 생각과 고민, 외로움을 달랜다. 돌아갈 집도 땅도 없는 수많은 캠핑족 친구들은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이움에 강제 수용되지 않기 위해서 경찰들의 망을 피해 숲이 우거진 곳으로 피해야 했고, 두려움과 염려를 안고 잠을 청한다. 나의 이탈리안 세프 남편 또한, 관광객들의 바캉스 시즌을 통해 일을 했건만, 올해 장사는 그냥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레스토랑 문을 닫고 1년치 임대료를 하나도 아닌 3군데에서 내야 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이게 되는 상황에 처했다. 이렇게 우리들은 세상 곳곳에서 각자의 어려운 상황에서 이 패닉 상태가 끝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위기가 왜 하필 내게 일어나는 것일까 자문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 이 위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가 더 중요할 뿐이다. 이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나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나와 당신, 그들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어느 곳에도 갈 수 없게 생활 반경들이 협소해질수록 나의 신경줄도 팽팽히 긴장이 되었고,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와 아이들, 우리 가족들이 제한된 생활 속에서도 평소처럼 살아갈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었다. 현재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값지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말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위기가 어쩌면 우리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매일매일 배워간다.
https://www.youtube.com/watch?v=wOYNRs_Z8Sg
우리로썬, 아이들이 학교나 유치원을 다니지 않고 언스쿨링을 하고 있으므로 (왜 내 아들은 학교를 가지 않는가 https://brunch.co.kr/@anachoi/60 참조), 우리 아이들의 삶의 패턴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커다란 장점이지 않을까 싶다. 다만,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밖에서 뛰어놀지 못하는 게 많이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이 위기로 인해 반강제적이긴 하지만, 전 세계의 아이들이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을 현재 부모님과 오붓하게 갖게 된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또한, 우리를 휘몰아친 이 위기가 사람 사는 세상이란 게 경쟁과 이윤, 성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친구들, 이웃들, 자연이 더불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란 걸 실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운이 좋게도 현재 나는 두 이탈리안 셰프들와 한집에서 살며 집밥을 먹고 있다. 이유인 즉슨, 이탈리아 자채 봉쇄를 하기 하루 전날, 남편의 동업자이자 우리의 가족과도 다름없는 Massi가 우리 집에 합류했다. 보통 Massi가 이 집에 머물 때면, 일 모드로 들어가서 이둘이 집에서 요리하는 일은 아주 드물건만, 유럽의 상황이 점점 아수렁으로 빠져가니, 레스토랑 문을 열 날도 미궁에 빠져갔다. 유럽은 한국과는 달리, 음식 배달 문화가 정착되기 어렵다. 그럼으로써, 지금과 같은 격리 생활은 삼시 세끼를 알아서 해 먹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집의 식탁 메뉴들은 하루하루 다양하게 채워져 간다. 오랫동안 못 먹어서 피자가 먹고 싶다며 직접 반죽을 발효시켜서 피자를 만들어 먹는 남편과 다양한 소스의 파스타들, 멕시코식 타코, 남편이 직접 손수 만든 라비올리, Massi가 직접 만든 햄버거 스테이크, 인도식 카레 닭 요리, 며칠 숙성시킨 고기들로 하는 발콘에서 여는 바비큐 파티, 일본인 뺨치게 맛있는 퓨젼 라면, 시금치 크레페, 나의 한국식 김밥, 비빔밥, 볶음밥, 미역국, 수제비, 송편 등이 우리 식탁에 올려진다. 그냥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나 하고 귀찮을 때도 있건만, 두 셰프의 말인즉슨, 하루 중 요리하는 게 낙중에 낙인데, 자기들이 하게 그냥 놔두라고 한다. 그렇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옷을 제작하듯 그들은 요리를 하는 것이다.
시간이 남아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 할 수가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시간이 없으니까 뒤로 미뤄두었던 일들을 이제는 끄집어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시간이 없어서, 정신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일, 바쁘다고 돌아봐주지 않았던 깊숙이 쳐박혀진 내 안의 자아와 오늘은 다시 마주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중국이 3일간 공장을 안 돌리면 세계의 공기가 달라진다는 것, 자동차 이용량이 줄면서 공기가 맑아졌다던가, 어부들이 낚시를 하지 않고 배들이 드나들지 않자, 베네치아에 물고기들이 다시 돌아왔다던가, 바다에 돌고래들이 심심찮게 보인다는 것. 이런 변화들은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로 생각할 것들을 안겨준다. 우리가 당연스럽게 사용했던 모든 자원들은 공짜가 아니었다. 이 모든 것에는 그만한 대가가 치러진다는 것을 이번 일로써 조금이나마 우리가 인식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함부로 써오고 당연시 여기던 모든 것들을 박탈당했을 때,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된다. 자연이 말없이 내어 주었던 모든 자원들, 맑은 공기, 깨끗한 물과 바다, 숲 등. 자연은 자연을 해치는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말소시킨다는 의미 깊은 말을 들었다. 그렇다. 우리가 망쳐놓은 많은 자연들이 이제 우리에게 그만하라고 경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쉴새 없이 돌아가던 인간 세계에게 이제 좀 멈추고 잃어버린 자연과의 접촉과 자연 본능을 돌이켜보라고 속삭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zAZ8GVDxWnY
혹시 아는가? 이 위기가 어쩌면 우리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지?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땅을 일구며 자급자족할 수 있는 날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가족들에게 어쩌면 이번 위기가 그 날을 앞당겨주는 것일지. 살아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다. 거대한 파도 앞에서 현재 우리는 순간을 살아가야 할 뿐인걸. 삶은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이번 위기가 우리의 삶에 또 다른 커다란 기회를 안겨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감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