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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Mar 27. 2020

코로나, 위기가 기회일지도

#020 스무번째 이야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인들이 겪는 고통, 아픔, 불안감들을 얘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돌면서 전 세계인들이 육체적으로 겪는 직접적인 영향과 더불어, 빠른 속도로 전염되는 확산 속도가 병원의 시스템을 마비하여, 고칠 수 있는 환자들이 의료 혜택을 못 받게 되는 비극들이 초래되는 것이 주는 위험과 그것이 내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기나긴 장기전으로 이어져 우울증까지 덮쳐왔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휘몰고 올 세계 경제 위기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움직임이 제한되면서, 경제 활동들이 멈춰지고, 도시들이 쥐 죽은 듯 비어져 버렸다. 우리 가족들은 유럽의 땅끝 마을인 포르투갈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지내고 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들려오는 심란한 뉴스들을 중국, 한국, 이탈리아 등에서 들으며 세계 여기저기에 흩어져 지내고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안부를 묻고, 세계 곳곳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달라지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시아버님의 건강 악화로 갑자기 이탈리아(밀라노)에 다녀오고 얼마 안 되어, 이탈리아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들이 속속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름 시즌 일이 시작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시아버님을 다시 한번 뵙고 오려고 했었으나 3월 9일 자로 모든 이탈리아 항공편들이 끊어지고, 이탈리아는 자채 봉쇄를 하였다. 그럼으로써, 이탈리아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우리는 갈 수가 없게 되는 황당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4일 뒤, 이탈리아에 있는 우리들의 친구의 어머니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미 연세가 있으시긴 했지만, 사인이 코로나 바이러스였기에, 격리 치료를 받으시고,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혼자서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셨다는 이야기와 이탈리아에선 아직도 흔치 않은 화장이 바로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새해 연말 파티 때 마지막으로 본 그 친구와 발콘에서 폭죽들이 터지는 것을 한참을 바라보며 한 달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나간 우리들의 오래된 친구이자 그녀의 남편과 그보다 한 달 더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나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었었건만. 그런 그녀에게 사랑하는 또 한 사람을 잃어버린 상실감이 얼마나 클지를 생각하면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될 거란 걸 안다. 그냥 곁에서 손 마주 잡고 그녀겯에 있어 줄 수 없는 게 마음 아프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공공 기관들이 문을 닫고, 회사들이 문을 닫고, 가게들과 레스토랑, 카페들이 속속들이 문을 닫고, 우리들은 집 속 안에 갇혀서 자체 격리를 하게 되었다. 처음 중국에서 들려오는 뉴스에서는 무슨 문등병 환자들을 내몰듯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들을 집안에 가두어 버리거나, 한국의 잘 짜여진 통신망으로 사생활이 속속들이 파해쳐져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권침해에 머리가 아찔했었다. 그러다 뒤늦게 이탈리아에서 하루에도 약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니,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한국만치 발달되지 않은 이곳의 의료시설이 그나마 마비되지 않게 하려면 개개인 하나하나가 협조해 주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또한, 가까운 사람들의 어려운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어떤 이는 100명을 직원으로 거느리는 청소 회사로, 아무도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업체들에서 일거리는 들어오지 않고, 이번 달 100명의 직원들에게 줄 월급을 걱정했다. 밀라노 중심가에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는 친구는 더 이상 집에도 가지 못하고(자채 격리로 인해, 거리를 나다닐 수가 없게 됨으로) 레스토랑에서 한 달가량 먹고 자면서 레스토랑 임대료를 메꾸기 위해서 Take out으로 최소 연명을 하면서 이 위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정원이 없는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집안에 꼼짝없이 갇혀서 발콘에서 바깥공기를 마시며 끊이지 않는 생각과 고민, 외로움을 달랜다. 돌아갈 집도 땅도 없는 수많은 캠핑족 친구들은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이움에 강제 수용되지 않기 위해서 경찰들의 망을 피해 숲이 우거진 곳으로 피해야 했고, 두려움과 염려를 안고 잠을 청한다. 나의 이탈리안 세프 남편 또한, 관광객들의 바캉스 시즌을 통해 일을 했건만, 올해 장사는 그냥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레스토랑 문을 닫고 1년치 임대료를 하나도 아닌 3군데에서 내야 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이게 되는 상황에 처했다. 이렇게 우리들은 세상 곳곳에서 각자의 어려운 상황에서 이 패닉 상태가 끝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위기가 왜 하필 내게 일어나는 것일까 자문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 이 위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가 더 중요할 뿐이다. 이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나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나와 당신, 그들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어느 곳에도 갈 수 없게 생활 반경들이 협소해질수록 나의 신경줄도 팽팽히 긴장이 되었고,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와 아이들, 우리 가족들이 제한된 생활 속에서도 평소처럼 살아갈 수 있게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었다. 현재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값지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말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위기가 어쩌면 우리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매일매일 배워간다.


https://www.youtube.com/watch?v=wOYNRs_Z8Sg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집에 격리된 이탈리아 국민들이 음악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에게 힘을 준다. 


전 세계에서 겪고 있는 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이 기이한 격리 생활은 제한된 조건들로 인해 창조적인 것들을 창출해 나간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는 집안에 자가 격리되면서 도시의 거리에는 정적만이 남았고, 모두 다 잘될 거라고 나 자신과 이웃들을 달래기 위해서 "오후 6시에 모두들 무슨 소리라도 내어보자"를 시작으로, 음악가들이 독주를 비롯해 이웃들과 더불어 발콘을 통해 협주를 하였다. 이들의 영상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해서 눈물이 난다.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인 우리가 살고 있는 포르투갈에서는 일찍이 모든 공공 기관들과 레스토랑, 카페,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가벼운 산책 정도는 허용이 되고 있지만 하루에 기본 5-6시간을 밖에서 노는 나의 모글리 남매들을 집안에서 24시간 가두어 둔다는 것은 그냥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집 뒤에 몇 년 동안 한번도 눈여겨보지도 않았던, 페허처럼 쓰러져가는 우중충한 주차장 공간을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갔다. 4인용 텐트와 매트리스, 피크닉용 돗자리, 작은 책상을 설치하고, 주차장 바닥에 자전거 길을 페인트로 칠했다. 자연히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자신의 장난감들과 자전거, 스케이드 보드, 씽씽이들을 가져다 놨다. 또한, 법에 접촉되어 짓다가 말아서 버려진 어두 컴컴한 집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도전거리가 되었다. 기억하는가? 귀신의 집처럼 어두 컴컴한 지하실에 손전등을 가지고 모험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을? 우리의 트란스 포머 그린 벤(트란스 포머 그린 벤 https://brunch.co.kr/@anachoi/45 참고)을 오픈하여 아이들이 마음대로 놀 수 있도록 함으로써, 환상의 세계로 운전대를 잡고 날아간다. 또한, Massi와 함께 시멘트 만들기를 직접 해서 비스킷 틀과 휴지심 등으로 모양을 잡아 시멘트 성을 제작해 보기도 한다.


페허처럼 쓰러져가는 우중충한 주차장에 텐트 설치(왼쪽)하고 자전거 타고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오른쪽)
페허처럼 쓰러져가는 우중충한 주차장에 자전거 길을 만들어 놓았다.
명상하는 가이아 (왼쪽), 워키토키를 제작 중인 율과 가이아 (오른쪽)
시멘트를 만들기 시작하는 Massi와 율 그리고 옆에서 물놀이 중인 가이아


집안에는 작게나마 목공 공간을 만듦으로써, 새로운 창작 거리들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2미터가 넘는 아이들의 책상을 제작하여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제작할 수 있도록 재료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재정리해보았다. 유머 감각이 넘치는 남편은 펑크록 음악들을 틀어놓고 아이들보다 더 미친 듯이 물건들을 마구 던지며 아이들과 함께 펑크족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또한, 어릴 적 자신의 할아버지와 함께 하던 놀이인 Bataglia navale (상대편의 배를 레이더 망에서 알아맞혀서 침몰시키는 놀이)를 첫째 아들 율이와 함께 한다. 오래전에 많이 읽어서 쳐다도 보지 않길래 박스안에 넣어두었던 책들을 다시 끄짚어내자, 아이들은 새책을 보듯 달려들어 주구장창 읽어나간다. 첫째 아들 율이는 장작 8시간 반이 넘는 해리포터 오디오 북을 하루 3시간씩 집중에서 듣기도 하고, 반복의 여왕인 딸 가이아는 약 1시간 정도 되는 Dory fantasmagorico 오디오 북을 2-3번씩 돌려서 듣기도 한다.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카포에이라Capoeira (브라질 스포츠)도 선생님의 배려로 온라인으로 집에서 계속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의 세계로 빠져든 아이들
2미터 길이의 책상을 제작 중인 남편 Giorgio (왼쪽) 와 이를 사용 중인 아이들
light box를 제작 중인 남편 Giorgio (왼쪽)와 이를 사용 중인 아이들
못과 털실을 이용해서 만든 별자리들
Bataglia navale (상대편의 배를 레이더 망에서 알아맞혀서 침몰시키는 놀이)를 하는 중인 남편 Giorgio와 율
카포에이라 Capoeira를 집에서 하는 중인 율
불장난이 금지가 아닌 우리집에서 초를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들(왼쪽), 드럼이 하나 더 필요한 날(중간), 토토로Totoro와 사랑에 빠진 가이아(오른쪽)


우리로썬, 아이들이 학교나 유치원을 다니지 않고 언스쿨링을 하고 있으므로 (왜 내 아들은 학교를 가지 않는가 https://brunch.co.kr/@anachoi/60 참조), 우리 아이들의 삶의 패턴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커다란 장점이지 않을까 싶다. 다만,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밖에서 뛰어놀지 못하는 게 많이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이 위기로 인해 반강제적이긴 하지만, 전 세계의 아이들이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을 현재 부모님과 오붓하게 갖게 된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또한, 우리를 휘몰아친 이 위기가 사람 사는 세상이란 게 경쟁과 이윤, 성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친구들, 이웃들, 자연이 더불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란 걸 실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온 가족이 다 함께 비스켓을 만드는 날


개인적으론, 요가와 명상,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옷 만들기를 다시 시작하고, 그림 그리는 시간을 더 늘려가며 몸을 움직이고 손을 움직임으로써 잡생각들을 없앤다. 때마침 읽고 있는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도 생각을 비우고 현재 주어진 시간들과 삶에 감사할 수 있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의 드로잉들
데이비드 호크니의 책 제목처럼 "다시, 그림이다."
치마 제작을 도와주고 있는 가이아


또한, 운이 좋게도 현재 나는 두 이탈리안 셰프들와 한집에서 살며 집밥을 먹고 있다. 이유인 즉슨, 이탈리아 자채 봉쇄를 하기 하루 전날, 남편의 동업자이자 우리의 가족과도 다름없는 Massi가 우리 집에 합류했다. 보통 Massi가 이 집에 머물 때면, 일 모드로 들어가서 이둘이 집에서 요리하는 일은 아주 드물건만, 유럽의 상황이 점점 아수렁으로 빠져가니, 레스토랑 문을 열 날도 미궁에 빠져갔다. 유럽은 한국과는 달리, 음식 배달 문화가 정착되기 어렵다. 그럼으로써, 지금과 같은 격리 생활은 삼시 세끼를 알아서 해 먹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집의 식탁 메뉴들은 하루하루 다양하게 채워져 간다. 오랫동안 못 먹어서 피자가 먹고 싶다며 직접 반죽을 발효시켜서 피자를 만들어 먹는 남편과 다양한 소스의 파스타들, 멕시코식 타코, 남편이 직접 손수 만든 라비올리, Massi가 직접 만든 햄버거 스테이크, 인도식 카레 닭 요리, 며칠 숙성시킨 고기들로 하는 발콘에서 여는 바비큐 파티, 일본인 뺨치게 맛있는 퓨젼 라면, 시금치 크레페, 나의 한국식 김밥, 비빔밥, 볶음밥, 미역국, 수제비, 송편 등이 우리 식탁에 올려진다. 그냥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나 하고 귀찮을 때도 있건만, 두 셰프의 말인즉슨, 하루 중 요리하는 게 낙중에 낙인데, 자기들이 하게 그냥 놔두라고 한다. 그렇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옷을 제작하듯 그들은 요리를 하는 것이다. 


세프 2명과 한 지붕에서 살기


시간이 남아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 할 수가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시간이 없으니까 뒤로 미뤄두었던 일들을 이제는 끄집어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시간이 없어서, 정신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일, 바쁘다고 돌아봐주지 않았던 깊숙이 쳐박혀진 내 안의 자아와 오늘은 다시 마주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중국이 3일간 공장을 안 돌리면 세계의 공기가 달라진다는 것, 자동차 이용량이 줄면서 공기가 맑아졌다던가, 어부들이 낚시를 하지 않고 배들이 드나들지 않자, 베네치아에 물고기들이 다시 돌아왔다던가, 바다에 돌고래들이 심심찮게 보인다는 것. 이런 변화들은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로 생각할 것들을 안겨준다. 우리가 당연스럽게 사용했던 모든 자원들은 공짜가 아니었다. 이 모든 것에는 그만한 대가가 치러진다는 것을 이번 일로써 조금이나마 우리가 인식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함부로 써오고 당연시 여기던 모든 것들을 박탈당했을 때,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된다. 자연이 말없이 내어 주었던 모든 자원들, 맑은 공기, 깨끗한 물과 바다, 숲 등. 자연은 자연을 해치는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말소시킨다는 의미 깊은 말을 들었다. 그렇다. 우리가 망쳐놓은 많은 자연들이 이제 우리에게 그만하라고 경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쉴새 없이 돌아가던 인간 세계에게 이제 좀 멈추고 잃어버린 자연과의 접촉과 자연 본능을 돌이켜보라고 속삭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zAZ8GVDxWnY


혹시 아는가? 이 위기가 어쩌면 우리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지?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땅을 일구며 자급자족할 수 있는 날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가족들에게 어쩌면 이번 위기가 그 날을 앞당겨주는 것일지. 살아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다. 거대한 파도 앞에서 현재 우리는 순간을 살아가야 할 뿐인걸. 삶은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이번 위기가 우리의 삶에 또 다른 커다란 기회를 안겨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감히 생각해본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사람으로 아이들이 자라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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