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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Jun 06. 2020

미역국 알아서 끓여먹는 여자

#022 스물두 번째 이야기

작년 오늘은 한국에서 마흔이 되는 날이었고, 오늘 내가 살고 있는 포르투갈에서 나는 다시 마흔이 되는 날이다. 어릴 적에 그 바쁜 와중에도 엄마는 오빠와 나의 생일이면 어김없이 미역국을 끓여 주시곤 하셨었다. 생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마치 생일이 되면 뭔가 굉장한 일이라도 생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작 생일이 되어 생일 케이크를 나눠 먹고, 선물을 받고도 뭔가 채워지지 않던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고, 무엇을 기대했었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성인이 되고, 미역국이란 음식이 생소한 나라로 떠났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 나는 나의 생일에 미역국을 제대로 챙겨 먹을 생각도 없이 정신없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었다. 그리고 내게 미역국이란 다른 한국 음식들처럼 한국 음식이 생각날 때 만들어 먹는 음식 중 하나이거나, 첫째 아들 율이와 둘째 딸 가이아를 낳았을 때 남편이 굉장히 많이 해주던 국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 나를 위해서인지, 겨울에 태어날 셋째 아이를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미역국이 아주 먹고 싶어 졌다. 그렇게 해서 나의 생일 전날 저녁, 나는 미역국을 끓였다.  


남편을 만나고, 나의 생일이면 언제나 남편의 여름 시즌일이 시작되므로, 나의 생일을 특별하게 챙겨보지 않았다. 생일 때만이 아니라, 언제나 그렇듯 남편은 들판에 핀 예쁜 꽃들을 한 다발 만들어서 내게 안겨주었고, 생각이 담긴 선물을 건넬 때도 있고, 그냥 얘기만 하다가 그냥 넘어가 버릴 때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생일이라고 야단법석을 떨며 파티를 벌이지 않고 지냈다. (남편의 50세 생일을 제외하고, 왜냐하면, 여기선 50세 생일을 특별하게 생각한다. 인생의 반을 보냈고, 이제부터 인생의 반이 시작된다고 여긴다.)   


생일이란 게 모름지기,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날이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하곤 했지만, 어린아이들에겐 생일이란 맛난 케이크를 먹을 수 있고 선물도 받을 수 있는 굉장한 날일 뿐이었다. 하긴, 나이 마흔이 되어서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나의 생일에 엄마가 굉장히 생각나는 철없는 나를 생각하면, 이는 당연할지도. 어쨌든, 오늘은 미역국을 혼자 챙겨서 끓여 먹으면서 엄마를 많이, 아주 많이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엄마와 아이들과 함께 보낸 눈부시게 빛나고 행복하고 아팠던 그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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