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순간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아마 이게 나이를 먹고 있다는 수많은 증거 중 하나겠다. 어릴 적에는, 그러니까 이십 대 때, 몇 년에 한 번쯤은, 입이 떡 벌어지게 에쁜 사람을 본 것 같은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비례하고 있다. 나이 듦과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횟수가. 사실 이제는 그런 감정을 느끼기엔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애매한 위치이기도 하고, 더해서 한국이 아닌 곳에 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단순하게 늙어서 관심이 줄었다고 할 수도 있다.
예전엔 그런, 눈이 확 도는 사람을 만나면 말을 걸었던 것 같다. 드물게 마주치는 인연인데, 그냥 흘려보내기 싫었던 것 같다. 물론 아무 데서나 다 그런 건 아니고, 상황이 잘 들어맞았을 때. 진짜 아깝게 말도 못 걸었던 경우도 있다. 웃기게도 얼굴은 가물가물한데, 그 상황만은 생생하다.
스물네 살쯤인가, 지금은 사라진 런던의 한 한인 슈퍼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계산까지 마치고 나가려는데 한여자가 친구와 들어왔다. 귀를 스치는 둘의 대화와 옷차림으로 봤을 때 홍콩 사람인 것 같았다. 예쁘네, 생각했다. 나 역시 같이 간 친구가 가자고 재촉해서 그렇게 스치듯 지나쳤다. 그렇게 집에 가는 중이었는데 자꾸 생각이 나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결국 버스에서 내려 되돌아갔지만, 역시나 당연히 예상했듯 이미그 사람은 없었다. 혹시나 또 마주칠 수 있을까 싶어 비슷한 시간대에 일부러 가보기도 했지만, 다들 알 듯 우연은 겹치지 않는다.
다른 한 번은 종로 2가에서 봤던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던 사람이었다. 보고는 광화문까지 뒤를 따라 걸었다. 말을 걸어볼까 계속 고민했지만 할 수 없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무언가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출국인지 입대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도 따라 걸었던 건, 뜬금 없지만 그 날 날씨가 너무 좋았다.
햇살은 쨍쨍했고, 하늘은 높고 맑았다. 바람은 가볍게 볼을 스치듯 불었다. 종로 2가에서 광화문까지 심어진 오래된 가로수들에는 여름을 앞두고 초록잎이 무성했다. 그 잎들 사이사이로 햇빛이 길을 밝히고 있었다. 아직 이십 대 청춘이었던 당시 내게 사람과 날씨 모두 매력적이었다. 그 풍경과 그 사람을 한 시야에 두고 보는 자체가 좋았다. 즐거웠다. 그래서 잊지 않으려 눈에 가득 담아두려 했던 것 같다. 지금 그렇듯.
그 사람은 광화문에서 시청 쪽으로 향했다. 뒤에서 이미 그 사람과 결혼까지 해서는, 애도 낳고, 환갑에 진갑잔치까지 마치고는 그대를 만나 행복했다며 임종을 맞이 한 상상을 끝낸 나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교보문고로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두 배가 된 지금은 뭐, 없다.
얼마 전 한국에 가기 전, 친구랑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가 한국 갔을 때 예쁜 여자가 그렇게 많았다며 호들갑을 떨길래, 설마 했지만 내심 조금은 기대했던 것 같다. 그래도 여기보단 낫겠지 싶어서. 확 끌리는 사람을 한번쯤 보고 싶다는 소망 같은 거. 안타깝게도 없었다. 원인은 여러가지 있겠지만 뭐 나 스스로가 가장 큰 이유겠지. 뭘 봐도 감흥이 예전만 못하다. 나이가 먹어서 그렇겠지. 정확하게는 점점 해야 할 것과 책임이 많아지면서, 반비례해 여유가 없어진 거다. 자극에 반응하는 마음의 여유.
그러다 최근에 눈이 번쩍 뜨이는 사람을—아니, 사진을 봤다. 아마 사진 속 사람이 눈 앞에 있었다면, 절대적으로 말을 걸었을 것 같다. 그 나이 먹고 주책이다, 징그럽다는 이야기를 들을지언정, 진짜 너무 매력적이시네요. 이 한마디는 할 것 같다. 어떤 노래의 표지 사진이었다. 노래 자체는 내 타입도 아니고 솔직히 별로인데, 플레이했을 때 앱 위로 뜨는 그 사진을 보고는 그냥 얼어버린 듯 보게 됐다. 플레이 버튼을 몇 번을 다시 눌렀는지 모른다.
사진은 평범하다. 비키니 입은 여자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표정, 화장, 의상, 조명, 포즈, 배경—어색하게 배치된 듯한 모든 요소들이 이상하게 조화를 이루며, 묘한 매력으로 눈을 사로 잡았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아랫입술이 도톰한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뭐 비키니도 좋았고.
사진 한 장 보고는 옛이야기까지 나오는 건, 최근에 고목처럼 메말라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로 슬픔이나 분노, 피로 만을 느끼며 살아왔던 탓에, 예전만큼 다양하게 느끼지 못하는 게 서글펐는데, 평소였다면 그저 지나쳐 갔을 사진 한 장이 조금이나마 예전처럼 감정을 느끼게 해줘서겠지. 다시 감정을 느끼는 내가 낯설고도 좋았다. 여전히 무언가를 느끼고 좋아할 수 있구나, 그런 마음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사진은 딱히 저장해두지 않았다. 그저 음악을 틀어 놓으면 가끔씩 뜨고, 난 또 바라본다. 하루에 몇 번 볼 때도 있고, 못 볼 때도 있다. 그저 가끔 한 번 씩, 몇 년에 한 번 봤던 매력적인 사람들처럼,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