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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0일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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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드리 Mar 18. 2019

센의 눈물과 하쿠의 주먹밥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실을 비디오로 찍은 일반 영화보다 '내가 정말 경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더 많이 준다. 아마도 섬세한 묘사 덕분이 아닐까? 센이 뛰어서 계단을 내려갈 때의 속력, 바람이 센의 옷 속으로 훅 들어올 때의 느낌, 유바바가 손짓을 할 때의 소름 끼침 등 이 애니의 너무나 많은 장면들이 보이는 화면을 넘어 나의 감각으로 느껴진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센이 온천에서 일하게 된 후, 다시 처음으로 하쿠를 만나는 장면이다. 센과 하쿠는 쪼그려 앉아서 얘기를 한다. 하쿠는 센에게 주먹밥을 먹으라고 준다. 센은 거절하지만, 하쿠는 이 주먹밥에는 기운을 내는 주문을 걸었다며 먹으라고 다시 권한다. 주먹밥을 받아 들고 우걱우걱 먹다가 센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엄마, 아빠는 돼지가 되었고, 이사를 하던 중이라 돌아갈 집은 없고, 이 곳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센은 어떤 감정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데 하쿠를 만나 엉엉 우는 이 장면을 보고, 센이 그동안 얼마나 두려웠을지, 혼자 얼마나 마음을 다잡았을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센이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하쿠가 센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도 알 수 있다. 


누구나 이때의 센 처럼, 무서움을 꾹 참다가 안심이 되었을 때 감정이 극적으로 표출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나는 살면서 그런 순간들을 맞이한다. 그때 내 옆에 있는 것은 위협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도 나의 가장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이다. 내가 마음껏 울 수 있고, 나에게 힘이 나는 주먹밥을 주는 그들과 항상 가까운 곳에 있고 싶다. 나도 그 존재에게 다가가고, 그 존재들도 나에게 다가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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