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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작가 Sep 23. 2021

7년 차 엔지니어, 이젠 진짜 안녕

직업을 찾는 두 번째 인생 설계



잘못 끼워진 첫 단추

11년 동안의 긴 연애를 끝내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인생 전체를 새롭게 설계해야 했다. 튼튼하게 지어올린 줄 알았던 나의 울타리는 생각지 못한 태풍을 만나 복구하지 못하고 완전하게 부서졌다. 건물을 설계하는 엔지니어였던 나는, 정작 나의 인생 설계는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5년 전, 한 번의 경고 시그널이 있었다. 첫 회사를 2년 만에 퇴사하고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으로 재취업하기 위해 다시 동굴로 들어가 암흑기를 보냈다.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서류 통과를 위한 스펙을 만드는 데 열중했다.


뒤늦게 재입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제대로 취업 준비를 해보지 않고 첫 직장에 입사했기 때문이다. 온전히 나의 결정에 의해서 회사에 입사를 한 게 아니라 지인의 권유로 너무 쉽게 결정했다. 들어갈 때는 쉽게 들어갔지만 나올 때는 쉽게 나올 수 없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단추를 다시 풀어야 했다. 잘못된 구멍이었다는 걸 깨닫고 내가 원하는 일을 찾는데 10년을 돌아갔기 때문이다.



현실과 타협했다


첫 직장의 환경적인 탓을 하며 더 나은 조건의 직장으로 이직할 준비를 했다. 직장이 아닌 직업을 탐색했어야 했는데 그땐 몰랐다. 재취업 준비를 하면서 나는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졸업생과 나의 스펙을 비교해 볼 때 서류를 통과할 기준 스펙은 비슷했다.


'난 실무 경험이 2년이나 있으니까 좀 더 수월하겠지?'


나의 큰 오산이었다. 스펙은 선발 기준의 일부였을 뿐,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거기에 하락세를 겪고 있는 건설 경기로 인해 취업문은 더 좁아지고 있었다. 꼬박 1년을 취준생으로 치열하게 살았는데 줄어가는 통장 잔고를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어 끝내 현실과 타협하게 되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되는구나'


당시 나의 인생 신호등은 노란 불이었다. 곧 빨간 불로 바뀔 것 같아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대로 백수가 되는 건 아닐까, 2년간의 공백기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미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선택의 길이 없었다.


엔지니어로 다시 동종업계로 취업했다. 그나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게 좋은 요인으로 작용해서 해외 건설 현장의 플랜트 설계를 하는 엔지니어로, 그곳에서 4년 5개월을 더 일했다.




좋은 직장의 조건 4 +1


첫 회사보다 모든 면에서 만족하며 회사에 다녔다. 처음부터 직장의 조건을 따져보고 입사한 건 아니었지만 직장을 선택하는 나만의 몇 가지 조건이 생겼다.


1) 통근 시간

집에서 강남까지 1시간 이내 통근이 가능한 점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금요일을 제외한 평일은 보통 9시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쉬려면 접근성이 중요했다. 대학생 때 학교까지 편도 2시간 거리를 통학했던 수고스러움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체력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통근시간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였다.


2) 사람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였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비슷해서 친구처럼 의지하며 지냈다.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동료와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면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자기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고립되지 않고 함께 나아갈 수 있다.


3) 자유로운 연차

맡은 바 일을 책임감 있게 끝낸다면 연차를 1~2주를 붙여 쓴다고 해도 괜찮았다. 야근과 주말 출근이 많았지만 버틸 수 있었던건 꿀 같은 여행이었다. 그동안 누리지 못한 걸 한 번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단 연차가 오래될수록 여행의 약발도 점점 떨어졌다. 1년에 3번의 행복을 위해 매일의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건 꿀이 아니라 힘든 고통을 잠시 망각하게 만드는 마약같은 존재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4) 연봉과 복지

동종 업계와 비교했을 때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매년 10% 인상이 있었다. 물론 팀과 개인의 성과에 따라 인상 조건이 달랐지만 100명이 넘는 직원들의 월급을 밀리지 않고 받고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맞지 않는 옷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했다.


4가지 조건은 내가 직장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조건들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이 빠져있다. 바로 '성장'이다. 회사를 다닐수록 점점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도, 열정도 없어졌다. 주어진 일만 잘 해내면 되는 반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회사에 다닌 지 4년째 되던 해에 과장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대리 때 하던 일을 과장이 되어서 또 하고'

'과장 때 하던 일을 차장이 되어서 또 하고'

'스스로 성장하지 않았는데 승진을 하는 게 맞나?'


앞으로의 커리어가 고민이 되었다. 회사 밖을 나서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 같아 겁이 났다. 나의 일을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 진지하게 나의 '업'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제 프로젝트 전체를 운영, 관리해야 하는데... 혼자서 잘 할 수 있을까?'


커리어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을 무렵, 11년 동안의 긴 연애도 끝이 났다. 왜 슬픈 일은 한꺼번에 오는 것인지,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건지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아서 살아지는 대로 인생을 살아온 10년이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목표도 사라졌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었던 걸까'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할 순 없는데, 왜 그걸 잊고 살았지...?'


10년 동안 인생을 헛 살아온듯한 느낌이 들어 눈물이 흘렀다. 허무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몇 달을 더 방황했다.


'인생 설계는 어떻게 해야 하지?'

'틀린 게 많을 땐 고치는 것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게 낫지 않을까?'

'처음부터 시작하기 너무 늦은 때는 아니겠지?'


무슨 일이 하고 싶은지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해도 할 수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뾰족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려면 나를 다른 환경으로 내몰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멈추자. 그래야 다시 달릴 수 있으니까'


모든 걸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던 순간, 거짓말처럼 나의 인생은 새롭게 시작되었다. 2017년 5월, 나의 첫 번째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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