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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남샘 Jan 29. 2022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맥락을 분별하는 일, 새로운 관계의 시작!

  안과 우울과 같은 감정과 싸우는데 썼던 시간과 힘을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에 쓸 수 있을 때, 원하는 삶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도 이를 행동으로 옮기긴 쉽지 않습니다.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에게서 벗어나거나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변화의 시그널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방해함을 깨달아도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여전히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늘 하던 행동으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당장 그 행동을 하는 것이 익숙하고 편하기 때문에 스스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도 비슷한 상황에서 그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은 그때가 아니라는 상황을 ‘분별’하는 일이며, 고통스러운 순간 자기 자신을 자책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교실에서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에게 선생님이 큰 소리로 무섭게 화를 내면 그 학생은 무서움을 느끼고 하던 행동을 멈춥니다. 이 패턴이 몇 번 반복되면 처음에는 큰 소리에만 움츠러들던 학생이 선생님만 보면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선생님을 만나는 장소인 교실에만 들어와도 불안함을 느끼고 그 불안함을 잊기 위해 딴짓을 하다가 또 혼이 납니다. 나중에는 선생님과 관련된 것들만 봐도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납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면 그 학생에게는 선생님, 교실, 학교가 불안, 분노, 초조함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과 연합이 됩니다. 학생은 자신의 행동으로 충분히 고통스럽기 때문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고치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그 행동은 학생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기능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도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문제 행동을 반복하는 학생을 보면 불안합니다. 불안하기 때문에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할 때마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냅니다. 쳇바퀴를 도는 다툼에 지친 선생님은 더 이상 아이를 채근하고 혼내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방법을 달리해서 아이가 하는 사소한 긍정적인 행동에 칭찬도 하고 문제 행동을 할 때도 예전처럼 바로 화를 내지 않고 기다려 주거나 부드럽게 타일러도 봅니다. 쉽지는 않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한 결과 선생님과 아이의 관계가 변하고 교실에는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학생에게는 선생님과 불안이라는 연합이, 선생님에게는 학생과 불안이라는 연합이 소거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소거는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에 대한 완벽한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번의 자극으로도 연합이 자발적으로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단 한 번이라도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에게 다시 화를 낸다면, 소거되었다고 믿었던 ‘선생님과 불안’이라는 연합이 살아납니다.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학생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학생과 불안’이라는 연합이 학생의 한 번의 문제 행동으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때, 과거의 불편했던 관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한 번의 꾸지람을 한 번의 꾸지람으로 한 번의 문제행동을 한 번의 문제행동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 번의 꾸지람과 한 번의 문제행동이 함께 보낸 시간의 전부가 아닌 일부분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한 번의 행동을 한 번의 행동으로 경험하는 것이'수용-전념 치료'에서 이야기하는 맥락을 분별하는 일이며, 새로운 관계의 시작입니다.


* 참고 도서: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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