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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남샘 Apr 25. 2022

우리를 가두는 말의 힘(1)

불안을 없애야 할 수 있다는 오해 말고 불안해도 할 수 있다고 이해하기

  수용-전념 치료에서는 불안하지 않아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수용-전념 치료에서는 불안해도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불안하지 않으면 발표를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학생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학생에게 불안은 발표를 할 수 없는 이유가 되고, 불안이 없어져야 발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안이 있어도 발표를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이상한 달리기’를 떠올려 봅시다.

  ‘이상한 달리기’에서 풍선은 불편한 생각, 감정, 자기-판단, 감각, 그리고 기억과 같은 부정적인 내적 경험을 의미했습니다. 풍선을 터뜨리지 않고 목적지까지 달려가 보았던 경험은 우리를 초조하게 하거나 불안하게 했던 내적 경험들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진 않지만 익숙해진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면서 가치를 둔 방향으로 행동하면 우리는 성장하게 되고, 목적지에서 바라본 한 때 우리를 압도했던 흰곰은 예전만큼 커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목적지로 출발할 때 다시 그 흰곰을 만날 수 있지만 예전처럼 흰곰이 두려워서 멈춰 서거나 흰곰과의 싸움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치를 향해 걸어갈 수 있습니다. 흰곰을 받아들이면 흰곰을 만나게 되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익숙한 행동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할 때, 우리는 낯선 흰곰을 만나고, 낯설기 때문에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불안해도 발표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상한 달리기’에서처럼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발표를 해보는 한 번의 ‘경험’이 중요합니다. 불안이 없어질 때까지 발표를 미루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더라도 발표를 해보는 것은 불안이 커졌다가 작아지는 것을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를 주저앉혔던 불안이 발표가 끝났을 때 사라지진 않았지만, 처음 만났을 때처럼 두렵진 않습니다. 숨이 막힐 것처럼 커 보였던 불안이, 발표를 마치고 조금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 번의 경험으로 다음에 발표할 때 아예 불안이 사라지거나 견딜만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불안을 안고 발표를 했던 경험은 ‘불안하지 않아야 발표를 할 수 있다’라는 생각에 ‘거리’를 둘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생각에 거리를 둠으로써, 우리는 생각이 사실인지 아닌지 논쟁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불안을 없애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느라 시간과 힘을 쓰는 것에서 벗어나, 발표를 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불안은 작아졌다 커지고, 커졌다가 작아지면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만, 발표가 끝날 때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불안이 낯설지 않습니다. 발표를 하면서 불안과 익숙해진 경험은, 다음에 다시 발표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불안에 충분히 머무를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생각에 거리를 두는 것을 ACT에서는 ‘탈융합(Cognitive Defusion)’이라고 합니다. 가치를 향해 걸어가면서 한 때 우리를 압도했던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에 익숙해져 본 경험은, 부정적인 내적 경험과 ‘거리’를 둘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이를 없애거나 피하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 해도 괜찮다고 말해줍니다. ‘탈융합’은 ‘수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ACT의 첫 번째 기둥인 ‘마음을 여는 과정(Open)’의 핵심이 됩니다.  


* 수용-전념치료(Acceptance-Commitment Therapy):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생각과 감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무능력하거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탓하는 것을 고통의 원인으로 여기는 심리치료적 접근.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자비롭게 바라보는 '자기-자비'를 치료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김.


* 흰곰: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불편한 생각, 감정, 감각, 그리고 기억들


* 참고 도서

  -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 Hayes, Steven C.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서울: 학지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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