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날로그 남샘 Jun 01. 2022

우리를 가두는 말의 힘(2)

내가 만든 나의 이야기를 따라가기보다는 지금을 살아가기

 우리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냅니다. ‘나는 멍청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에 ‘융합’이 되면, 이를 사실이라고 여기고 실패나 좌절의 원인으로 여깁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실수와 실패는 ‘나는 멍청한 사람이야.’를 증명하는 훌륭한 증거가 됩니다. 이때,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나는 멍청한 사람이야.’를 뒷받침해주는 사건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져서 문제를 해결한 경우와 같이 ‘내가 멍청하지 않은 것 같은 경험’들이 나를 당황하게 합니다. ‘나는 멍청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에 ‘융합’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공은 우연이라고 여겨지고 한 번의 성공으로 만족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 두려워합니다. 그러다가 사소한 실수라도 하게 되면, ‘거봐, 역시 나는 멍청한 사람이야.’라고 안도합니다. 이처럼 ‘융합(Cognitive Fusion)’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게 하고, 그 이야기가 말하는 대로 살아가도록 유도합니다. 우리는 왜 생각과 ‘융합’을 하는 걸까요?

  생각과 ‘융합’을 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ACT의 기본 철학인 ‘기능적 맥락주의(Functional Contextualism)’의 철학적 가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험 회피’와 ‘수용’과 마찬가지로, ‘융합’과 ‘탈융합’도 ‘행동’입니다. ‘기능적 맥락주의’에서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계속 행동하는 이유는, 그 행동이 어떤 방식으로든 ‘기능’ 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부정적인 기능이든, 긍정적인 기능이든, 어떤 역할을 하기 때문에 행동이 유지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융합’은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과 같은 원치 않는 경험을 할 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그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해 냅니다. ‘불안하기 때문에 발표를 할 수 없어’ 또는 ‘나는 멍청하기 때문에 또 실패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지금 경험하는 불안, 실망, 좌절과 같은 부정적인 내적 경험을 정당화합니다. 흰곰을 만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내면서, 부끄럽고 피하고 싶은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을 어쩔 수 없이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이처럼 ‘융합’은 피하고 싶은 생각, 감정, 자기-판단, 감정, 그리고 기억에 대한 이유를 만들어서 잠깐이지만 고통으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기능’합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융합’이 되면, 우리는 이야기에 따라 행동합니다. ‘나는 멍청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에 빠지게 되면, 일상에서 경험하는 실수와 실패들만 크게 보입니다. 자신이 ‘생각’해 낸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굳어지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용기를 잃습니다.

  ‘나는 멍청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나는 똑똑한 사람이야.’로 바꾸는 것은 ‘탈융합’이 아닙니다. ACT에서는  ‘비합리적인 생각’을 ‘합리적인 생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탈융합’은 생각에 대해 거리를 두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생각은 말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는 말이 가리키는 방향을 봅니다. 우리를 가두는 말의 힘을 알아볼 수 있는 경험적 연습을 소개합니다. 



<경험적 연습  – 우리를 가두는 말의 힘

 1. 흰 종이를 한 장 준비하고, 반으로 접습니다.

 2. 한쪽에 부담감, 실패, 답답함, 두려움, 다툼 등 부정적인 단어들을 5~8개 적습니다.

 3. 내가 쓴 부정적인 단어들이 주는 느낌을 떠올려 봅니다. 예를 들어, ‘실패’는 ‘부끄러운’, ‘화나는’과 같은 느낌을, 불안은 ‘뾰족한’, ‘답답한’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4. ‘부끄러운 실패’ 또는 ‘뾰족한 불안’과 같이 부정적인 단어들을 그 단어들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을 가진 단어로 꾸며봅시다. 

 5. 다 쓰면, 접어놓은 다른 한쪽에 아까 쓴 부정적인 단어들을 똑같이 씁니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말로 그 단어들을 꾸며봅니다. ‘만족한 실패’, ‘따뜻한 불안’, ‘말랑한 다툼’과 같이 쓰면 됩니다.

 6. ‘부끄러운 실패’와 ‘만족한 실패’, ‘뾰족한 불안’과 ‘따뜻한 불안’, ‘짜증 나는 다툼’과 ‘말랑한 다툼’과 같이 부정적인 단어도 꾸며주는 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우리를 가두는 말의 힘’ 활동으로, 평소 자신이 얼마나 언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부담감, 두려움, 불안, 실패, 다툼과 같은 부정적인 명사는 ‘피하고 싶은’, ‘짜증 나는’, ‘부끄러운’, ‘숨 막히는’ 등과 같은 부정적인 형용사와 짝지어집니다. 부담감은 답답하고, 두려움은 숨이 막히며, 불안은 짜증 나고, 실패는 부끄럽습니다. 더 나아가면, 부담스러운 상황은 답답하고, 두려운 상황은 숨이 막히며, 불안한 상황은 짜증 나고,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실패하면 부끄럽다고 느껴집니다. 이처럼, 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면 부담감, 두려움, 불안, 실패는 피하거나 없애고 싶은 ‘문제’가 됩니다. 부정적인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과 같은 내적 경험은 ‘문제’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함정’에 갇힙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과 싸우느라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힘과 시간을 낭비했던 처음으로 되돌아갑니다. 

  ‘우리를 가두는 말의 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던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부끄러운 실패’를 ‘만족한 실패’로 바꾸면 어떻게 느껴지나요? 실패라는 단어는 똑같지만,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은 달라집니다. 실패는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도전에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힘든 부담감’을 ‘푹신한 부담감’으로, ‘뾰족한 다툼’을 ‘말랑한 다툼’으로 바꿀 때도 단어가 주는 느낌이 달라집니다. 이처럼 ‘탈융합’은 우리를 가두는 말의 힘에서 멀어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 수용-전념치료(Acceptance-Commitment Therapy):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생각과 감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무능력하거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탓하는 것을 고통의 원인으로 여기는 심리치료적 접근.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자비롭게 바라보는 '자기-자비'를 치료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김.


* 흰곰: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불편한 생각, 감정, 감각, 그리고 기억들


* 참고 도서

  -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 Hayes, Steven C.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서울: 학지사, 2010.

작가의 이전글 우리를 가두는 말의 힘(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