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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남샘 Jan 03. 2023

말 깨뜨리기(1)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을 못 보게 하는 그때 그 순간의 생각과 거리두기

  ACT에서는 ‘언어적 관계형성이론(Relational Frame Theory)’으로 말이 가진 힘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며, 말로 경험들을 평가합니다. 말은 경험을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전달하고, 언어화된 경험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린아이일수록 어른들의 말로 자신의 경험을 ‘좋다.’ ‘나쁘다.’, ‘잘한다.’, ‘못한다.’ 등으로 평가하고, 그 평가에 따라 현재 자신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어려서부터 형과 비교를 많이 하는 부모님에게서 자란 아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형은 어려서부터 부모님 말도 잘 듣고 떼를 쓰거나 친구들과 싸우는 일도 많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형을 기준으로 둘째 아이를 꾸짖거나 칭찬했습니다. 장난을 쳐서 물건을 깨뜨리거나, 친구와 싸우거나, 실수를 할 때마다, ‘형은 안 그런데 너는 왜 그러니?’라고 꾸짖었습니다. 심지어, 잘할 때조차 ‘형처럼 잘하니까 얼마나 예쁘니.’라며 칭찬했습니다. 형은 기준이 되고, 아이는 ‘형처럼 해야 잘한다고 칭찬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형의 역할은 다른 친구들이 맡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다른 친구들을 칭찬하는 모습을 보면서 ‘형처럼 해야 잘한다고 칭찬받을 수 있다.’라는 생각은 ‘잘하는 친구처럼 해야 칭찬받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넓어졌습니다. 가끔 선생님이 자신을 칭찬하더라도, 자신이 잘해서 칭찬을 받았다기보다는 ‘잘하는 친구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라고 믿었습니다. 커가면서 친구의 역할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맡게 되고, 생각은 점점 일반화되었습니다.

  ‘잘하는 친구처럼 해야 칭찬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어느 순간부터 아이에게 사실이 되고, 아이는 생각에 ‘융합’ 됩니다. 성인이 되었을 때도 ‘잘하는 사람처럼 해야 칭찬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따라 지금 자신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 혼자 내린 결정이 불안해져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생각에 갇혀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기 힘들어집니다. 생각에 ‘융합’되면, 불편한 생각을 일으키는 상황을 피하고자 ‘경험 회피’로 행동하게 되고, 한 때 사실이었을 수도 있는 생각에 가려진 지금 이 순간의 다른 선택들을 보지 못합니다.

  ACT에서는 생각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벗어나, 생각이 생각임을 ‘알아차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언어적 관계형성이론’에 따르면, 마음은 끊임없이 한 사건을 다른 사건과 관련짓고, 이 과정에서 경험은 범주화되며 판단됩니다. 말은 경험을 평가하고, 생각으로 표현되며, 생각은 사실로 굳어져서 우리 행동을 결정합니다.  ‘우리를 가두는 말의 힘’에서 학생들이 실패, 불안, 좌절과 같은 단어에 ‘부끄러운’, ‘뾰족한’, ‘피하고 싶은’과 같은 부정적인 말을 습관적으로 짝지었다는 것을 기억하나요? ‘부끄러운 실패’, ‘뾰족한 불안’, ‘피하고 싶은 좌절’과 같이, 어떤 경험이 부정적인 말과 짝지어졌을 때 그 경험들은 피하고 싶은 대상이 됩니다. 말이 만들어낸 생각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일 때, ‘인지적 융합’은 시작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경험을 말로 기억하고, 언어화된 경험을 평가하고 판단하며 범주화하고 일반화면서 어느 순간, 그 말들이 가리키는 방향만 보면서 살아갑니다. 특히 불안, 우울, 슬픔, 지루함, 불안정함과 같은 부정적인 말로 기억된 경험들은 지금 이 순간은 물론, 다가올 순간에도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피하거나 도망칩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자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원치 않는 감정, 기억, 그리고 기억들을 경험합니다. 살면서 만날 수밖에 없는 불편한 감정, 생각, 그리고 기억들을 피하려고 하거나 없애려고 할수록, ‘피부 안의 세상’에서 우리는 그 감정, 생각, 그리고 기억들을 더 자주 경험합니다. ACT에서는 ‘피부 안의 세상’에 속하는 생각, 감정, 자기-판단, 감각, 그리고 기억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거나 불편하게 할 때, 이를 덜 경험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을 ‘경험 회피’라고 이야기합니다.

  ‘경험 회피’는 지금 이 순간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시간과 힘을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경험하지 않으려고 하는 싸움에 쓰게 하면서 원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괴물과의 줄다리기’에서 살펴보았듯이,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에서 벗어나려고 할수록, 피하고 싶은 괴물은 더 큰 힘으로 우리를 잡아당겼습니다. 

  불편한 생각과 감정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생각과 감정을 경험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무능력하거나 의지가 약하다고 자책하기 쉽습니다. 또,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나만 그런 것 같은 소외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경험 회피’는 고통이 더 깊어지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를 ‘경험 회피’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수용-전념치료(Acceptance-Commitment Therapy):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생각과 감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무능력하거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탓하는 것을 고통의 원인으로 여기는 심리치료적 접근.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자비롭게 바라보는 '자기-자비'를 치료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김.


* 흰곰: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불편한 생각, 감정, 감각, 그리고 기억들


* 참고 도서

  -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 Hayes, Steven C.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서울: 학지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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