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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남샘 Jan 05. 2023

말 깨뜨리기(3)

생각이라는 선글라스를 벗고, 지금 이 순간을 마주하기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익숙한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주스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주스라는 말을 발음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주스를 직접 마시지는 않았지만, 입에 시큼한 맛이 나면서 주스와 관련된 추억도 떠오르지 않았나요?

 이번에는 주스를 30초 동안 또렷하면서도 빨리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스를 여러 번 말하다 보면, 발음이 어색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처음 주스라는 말을 했을 때 느꼈던 시큼한 맛도 떠올렸던 추억도 희미해집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가 되는 말들을 그저 말로써 볼 수 있다면, 그 말이 끌어당겼던 부정적인 감정들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교실에서 ‘탈융합’을 경험해볼 수 있는 ‘말 깨뜨리기’ 활동을 소개합니다.



<경험적 연습 – 말 깨뜨리기


 1. ‘주스’라는 단어를 말해봅니다.

 2. ‘주스’라고 말하면서, 무엇이 떠올랐는지 적어봅시다. 맛, 색깔, 경험 등 생각나는 것은 무엇이든 적어봅니다.

 3. 이번에는 ‘주스’를 30초 동안 말해보겠습니다.

 4. 30초 동안 ‘주스’를 말해보면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적오봅니다. 

 5. ‘주스’를 처음 말했을 때와 ‘주스’를 30초 동안 말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똑같은 단어를 계속 말해보면서 우리는 그 단어가 그저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6. 이번에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한 단어로 만들어 봅시다. ‘모질이’ 또는 ‘바보’와 같이 정하면 됩니다.

 7. 여러분이 정한 단어를 말했을 때 주는 느낌을 적어봅시다. 

 8. 이번에는 ‘주스’에서 했던 것처럼, 여러분이 정한 단어를 30초 동안 말해보겠습니다.

 9. ‘주스’를 30초 동안 말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붙인 부정적인 이름도 말할수록 그 의미가 조금씩 희미해집니다. 이처럼 말은 그저 말이라는 것을 경험할 때, 우리는 그 말이 가진 생각에 거리를 둘 수 있습니다. 생각에 거리를 둔다는 것은 그 생각과의 싸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 깨뜨리기’ 활동에서 아이들은 익숙했던 주스라는 단어가 어색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30초 동안 주스를 반복해서 말하면서, 처음 주스를 떠올렸을 때 느껴졌던 시큼한 맛과 색깔들이 사라지고 어느새 주스라는 말만 남습니다. 주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반복해서 말하다 보면 그 생각과 관련된 감정은 조금씩 희미해집니다.

  ‘말 깨뜨리기’ 활동에서는 생각이 생각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마음은 생각을 끊임없이 만들어 냅니다. ‘생각’과 ‘생각하는 나’ 사이에 거리가 생길 때, 우리는 여유로워집니다. 생각은 날씨와 같아서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생각하는 나는 지금 이 순간 생각과 무관하게 지금 이 순간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생각을 생각 그대로 둔다면, 우리는 생각과의 씨름에 지금 이 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힘을 쓰는 것은 ‘괴물과의 줄다리기’에서 경험했듯이, 구덩이에 빠지는 함정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에 빠져있으면, 우리는 생각을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라고 믿게 됩니다. 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생각하면서, 지금 이 순간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것을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 맞게 해석합니다. 이때, 우리를 힘들고 괴롭게 하는 생각을 이루는 말들을 그저 말로써 볼 수 있다면, 오랫동안 반복된 생각대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볼 때는 세상이 온통 까맣게 보이지만, 선글라스를 벗으면 세상이 제 빛깔을 찾는 것처럼 말입니다. 



* 수용-전념치료(Acceptance-Commitment Therapy):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생각과 감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무능력하거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탓하는 것을 고통의 원인으로 여기는 심리치료적 접근.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자비롭게 바라보는 '자기-자비'를 치료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김.


* 흰곰: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불편한 생각, 감정, 감각, 그리고 기억들


* 참고 도서

  -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 Hayes, Steven C.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서울: 학지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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