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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남샘 Jan 06. 2023

마음의 북 울리기

삶에서는 체크메이트로 게임을 끝낼 수 없다.

  ACT에서는 체스를 비유로 들어 ‘피부 안의 세상’의 싸움을 설명합니다. 체스판 위에 놓인 검은 말과 흰 말은 서로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고, 체크메이트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갑니다. 흰 말이 검은 말을 압도하다가도, 검은 말의 반격에 흰 말은 궁지에 몰립니다. 실제 체스 게임과 ‘피부 안의 세상’의 체스 게임의 다른 점은 죽은 말들이 다시 살아난다는데 있습니다. ‘피부 안의 세상’의 체스게임에서는 흰 비숍이 검은 나이트를 말에서 떨어뜨려도, 시간이 지나면 검은 나이트가 되살아나 흰 비숍을 무너뜨립니다. 흰 말이 체크메이트를 외쳐도 잠시 후에 검은 말들이 되살아나서 다시 싸움이 시작되고, 검은 말이 흰 말을 모두 몰아내도 시간이 지나면 게임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체스 게임에서 각각의 말들은 ‘피부 안의 세상’에서 경험하는 감정, 생각, 감각, 자기-판단, 그리고 기억들을 의미합니다. 흰 말은 행복, 사랑, 성취, 만족과 같은 긍정적인 내적 경험이며, 검은 말은 불안, 두려움, 실패, 절망과 같은 부정적인 내적 경험입니다. 흰 말과 검은 말이 내적 경험이라면, 체스 게임에서 ‘나’는 무엇일까요? 글을 계속 읽기 전에 체스 게임에서 ‘나’가 무엇일지 생각해 봅시다. 체스 게임에서 ‘나’를 찾았나요?

  ‘피부 안의 세상’의 체스 게임에서 ‘나’는 ‘체스판’입니다. 체스판 위에서 검은 말과 흰 말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과 같이, 부정적인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과 긍정적인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은 ‘나’ 안에서 엎치락뒤치락합니다. 흰 말과 검은 말이 체스판이 아닌 것처럼, 부정적인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과 긍정적인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도 내가 아닙니다. 체스판에게 전쟁의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흰 말이 이기든 검은 말이 이기든 전쟁은 끝이 없이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체크메이트가 게임을 끝내지 못함을 알아차리는 데 있습니다.

  ‘피부 안의 세상’의 체스게임에서 흰 말은 긍정적인 내적 경험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는 흰 말이 이기길 바랍니다. 흰 말이 이기길 바라며 힘을 실어주는 순간, ‘인지적 융합’은 시작됩니다. ‘인지적 융합’이 시작되면, ‘피부 안의 세상’에서 경험하는 생각, 감정, 자기-판단, 그리고 기억과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자신을 특정한 방향으로 정의합니다. ‘피부 안의 세상’의 체스게임에서는 흰 말이 이겼다고 해서 게임이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생각, 감정, 자기-판단, 그리고 기억을 의미하는 검은 말들은 되살아나면서, 싸움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체스게임에서 검은 말이 지기를 바라는 것은 ‘경험 회피’를 의미합니다. ‘경험 회피’를 하면,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을 외면하는데 힘을 쓰면서, 지금 이 순간 원하는 삶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흰 말이 이기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 습관이 되면, 싸움의 결과와 관계없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잊습니다. 흰 말이 검은 말을 이겨야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겨를도 없이, 흰 말과 검은 말의 싸움에 갇힙니다. 

  흰 말과 검은 말의 싸움에 갇혀서 현재 순간에 접촉하지 못할 때, 지금-여기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알아챌 수 있도록 마음의 북을 울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지적 융합’에서 ‘탈융합’으로, ‘경험 회피’에서 ‘수용’으로 나아갈 때, 마음의 북을 울릴 수 있습니다. ‘인지적 탈융합’은 생각에서 거리를 두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생각과 거리를 두면,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라 ‘생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빨간 선글라스를 벗을 때 세상이 제 빛깔을 찾는 것처럼, 생각을 벗어야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볼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때 만나게 되는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수용’입니다. ‘수용’은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에서 도망치거나 피하는 것도 아니며,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체념하는 것도 아닙니다. ‘수용’은 힘들고 아픈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이 우리를 괴롭고 고통스럽게 할지라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경험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적극적인 행동입니다. 

  지금까지, ACT의 첫 번째 기둥인 ‘마음을 여는 과정(Open)’을 살펴보았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마음을 여는 과정(Open)’은 ‘탈융합’과 ‘수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탈융합’과 ‘수용’은 마음을 어디로 열어줄까요? ‘탈융합’과 ‘수용’은 마음을 ‘지금 이 순간’으로 열어줍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때, 우리는 한 번의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한 번의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으로 경험합니다. 지금 이 순간의 경험들로 마음의 북(Book)이 채워지면, 마음의 북(Drum)도 울리기 시작합니다.


* 수용-전념치료(Acceptance-Commitment Therapy):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생각과 감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무능력하거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탓하는 것을 고통의 원인으로 여기는 심리치료적 접근.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자비롭게 바라보는 '자기-자비'를 치료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김.


* 흰곰: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불편한 생각, 감정, 감각, 그리고 기억들


* 참고 도서

  -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 Hayes, Steven C.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서울: 학지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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