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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남샘 Jan 07. 2023

생각과 거리두기, 그리고 가치 찾기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알려준다.

  생각에 빠지면, 생각이 시키는 대로 행동합니다. 오래되고 익숙한 생각일수록, 우리는 그 생각이 다만 ‘생각’ 일뿐이라는 것을 잊고 ‘사실’로 받아들여 행동을 결정합니다. 수용-전념 치료에서 이야기하는 ‘탈융합’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생각에 거리를 둠으로써, 습관적으로 선택한 행동들이 지금 이 순간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인지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ACT에서는 우리가 생각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게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문제가 아니라,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끊임없이 논쟁하는 것을 문제라고 보는 것이죠. 마음은 끊임없이 생각을 만들어내지만, 한 번의 생각은 내가 아닙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도망치거나 피하는 것도, 애써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탈융합’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생각을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 그 생각을 한 번의 생각으로 경험하는 것이 ‘ 탈융합’입니다.

  물론, 우리를 괴롭고 힘들게 하는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이 사실이 아니라고 논쟁하거나 외면하고 싶어 집니다.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이다.’라는 생각처럼 스스로를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평가하면서 자책하도록 합니다. 이 생각과 거리를 둘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이다.’를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바꾸어 보는 것입니다. 

  학생이 수업 중에 딴전을 피우거나 지루한 표정을 지을 때, ‘수업이 재미가 없으니까 아이들이 집중을 못하고 있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가정해 봅시다. 평소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이다.’라는 생각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수업에 집중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자 자동적으로 ‘수업이 재미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죠. 겉으로는 수업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수업이 부담이 되기 시작합니다. 목소리에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아이들 앞에 서있는 자세가 어색해지기도 합니다.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힘들게 시간을 때우거나, 서둘러 수업을 마무리할 수도 있습니다. 쉬는 시간에도 다음 수업 시간이 걱정됩니다. 애써 수업이 잘 되었던 기억을 떠올려서 힘을 내보지만,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이다.’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좀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고 다음 수업도 방해합니다.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이다.’라는 생각을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로 바꾸어보겠습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할 때, 예전 같으면 ‘수업이 재미가 없으니까 아이들이 또 집중을 못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맥이 빠졌겠지만 이번에는 좀 다릅니다.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이다.’라는 생각을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고 거리를 두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이다.’라는 생각과 씨름하느라 놓쳤던 지금 이 순간을 볼 수 있지 않나요? 

  생각이 맞고 틀린 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픈 생각이 떠올라도 지금 이 순간 수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떠오른 생각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에 그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고 따지고 싶지만, 생각이 옳고 틀린 지 따지다 보면 생각과의 거리가 좁혀집니다, 생각과 가까워질수록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이다.’라는 생각이 가리키는 방향만 보게 되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만 눈에 들어옵니다. 이때,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로 생각과 거리를 두면, 생각과 싸우는데 시간과 힘을 쓰는 것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에 더 집중하면서 책임감 있게 수업을 이끌어 나갈 수 있습니다. 비록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재미없는 선생님이라고 스스로를 탓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생각과의 씨름으로 주저 않거나 애써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는데 힘을 쓰기보다는 그 생각을 안고도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떠오른 생각은 한 번의 생각입니다. 생각에 빠지면, 생각은 생겨났다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잊게 됩니다. 생각과 씨름을 하다 보면, 생각은 점점 끈적끈적해집니다. 한 번 머릿속에 자리 잡은 생각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생각과 씨름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과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이다.’를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로 바꾸는 것처럼 생각과 생각하는 사람을 구별하면, 생각과 거리를 둘 수 있습니다. 생각과 거리를 두면, 생각은 떠올랐다가 지나가고 또 떠오르고 지나가는 것을 반복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불편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해서 서둘러 자리를 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불편한 생각과 충분히 머무르면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다 보면, 불편한 생각은 마음이 만들어낸 다른 생각에 자리를 내줍니다. 불편한 생각이 다시 떠올라도 그 생각이 예전만큼 무섭지 않습니다.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불편한 생각이 작아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불안하지 않아야 발표를 할 수 있다.’를 ‘불안해도 발표를 할 수 있다.’로 바꾸었을 때, 불안과 싸우지 않고도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힘든 생각은 가치를 포함합니다.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이다.’라는 생각이 나에게는 중요하지만,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선생님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선생님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가치를 가진 선생님에게는 ‘나는 재미없는 선생님이다.’라는 생각이 아픕니다. 우리에게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있고, 스스로가 그 가치에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 그 생각은 우리를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인지적 탈융합’으로 어떤 생각과 거리를 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 그 생각과 거리를 둠으로써,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그 가치를 향해 가는데 도움이 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으로 힘이 들 때, 그 생각이 알려주는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본다면 어떨까요? 더 나아가 그 가치가 내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인지 고민을 해본다면,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을 안고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수용-전념치료(Acceptance-Commitment Therapy):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생각과 감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무능력하거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탓하는 것을 고통의 원인으로 여기는 심리치료적 접근.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자비롭게 바라보는 '자기-자비'를 치료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김.


* 흰곰: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불편한 생각, 감정, 감각, 그리고 기억들


* 참고 도서

  -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 Hayes, Steven C.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서울: 학지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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