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하나가 맞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틀린 것은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수용-전념 치료에서는 생각의 내용이 문제라고 보지 않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생각이 참인지 거짓인지 싸우다 보면, 그 생각은 우리 안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습니다. 생각과의 싸움에서 이겨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생각이 잠시 물러간다고 하더라도, 그 생각은 이내 다른 논리를 들고 찾아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생각과의 싸움은 끝이 없습니다.
‘나는 대인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라는 생각과 ‘융합’이 된 아이는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것보다는 이 ‘생각’ 자체에 주의를 빼앗깁니다. ‘저 친구와 친해지고 싶어. 그러나 나는 대인공포증을 가지고 있어.’에서와 같이, 지금 이 순간 원하는 것이 아닌 ‘나는 대인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집중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 번 ‘융합’된 생각은 계속 가지를 뻗어나갑니다. 낯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모임에 가고 싶어도, ‘그 모임에 참석하고 싶어. 그러나 나는 대인공포증을 가지고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가지 않거나,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도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지만, 대인공포증을 가지고 있어서 말도 걸지 못하겠어.’와 같이, ‘나는 대인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일상생활에서 행동을 선택하는 기준이 됩니다. 이처럼 ‘인지적 융합’은 그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행동들을 피하게 되는 ‘경험 회피’의 원인이 되고, 뻗어나간 가지는 점점 많아지고 두꺼워져서 우리를 일정한 행동의 틀 안에 가둡니다.
‘인지적 융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생각과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생각과 거리를 두는 첫걸음은, 그 생각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지 따져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나는 대인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사실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각과 싸우는데 쓴 시간과 힘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위해 쓸 수 있음을 경험한다면, '나는 대인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사실일지라도 그 생각은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경험적 연습 9 – ‘그러나’ 또는 ‘그리고’>
1. ‘발표를 하고 싶어. 그러나 실수할까 봐 불안해.’와 ‘발표를 하고 싶어. 그리고 실수할까 봐 불안해.’의 차이를 생각해 봅시다.
2. ‘그러나’ 대신 ‘그리고’를 쓰면 두 문장이 모두 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앞 문장이 참이기 위해 뒷문장이 거짓일 필요가 없고, 또 뒷문장이 참이기 위해 앞 문장이 거짓일 필요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발표를 하고 싶어. 그러나 실수할까 봐 불안해'와 같이 평소 나를 불안하게 하거나 용기를 잃게 하는 생각을 떠올려 봅시다. 그리고 그 생각을 '발표를 하고 싶어. 그리고 실수할까 봐 불안해.'와 같이 바꾸어 봅시다.
4. '그러나'를 '그리고'로 바꾸면 불편한 생각 또는 감정이 사라지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경험적 연습 9>에서 우리가 자주 빠지는 생각의 함정을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생각과 ‘융합’이 될수록, 사람들은 ‘그러나’를 많이 사용합니다. ‘발표를 하고 싶어. 그러나 실수할까 봐 불안해.’라는 문장에서, 우리는 ‘실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발표를 할 수 없다.’는 생각과 융합되어 있습니다. 실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발표를 할 수 없어서, 불안을 없애기 위해 싸우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생각의 함정에 빠지면 사람들은 생각에 따라 행동합니다. 생각에 깊이 ‘융합’될수록,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는 생각은 자동적으로 떠오르고, 생각이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아차리기가 더욱 힘들어집니다.
‘발표를 하고 싶어. 그리고 실수할까 봐 불안해.’라는 문장에서처럼, ‘그러나’를 ‘그리고’로 바꾸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그러나’를 ‘그리고’로 바꾸었을 뿐인데, ‘실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발표를 할 수 없다.’는 생각과 거리를 둘 수 있지 않았나요? ‘발표를 하고 싶어. 그리고 실수할까 봐 불안해.’에서 우리는, 실수할까 봐 불안해서 발표를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실수할까 봐 불안해도 발표를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를 ‘그리고’로 바꿈으로써, 생각은 한 번의 ‘생각’ 일뿐,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아님을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생각과 거리를 둘 때, 그 생각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생각이 가려왔던 다른 선택들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를 가두어왔던 생각과 거리가 멀어질수록, 세상을 ‘생각’을 통해 보아 왔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눈이 아플까 봐 썼던 생각이라는 선글라스를 벗어야, 눈이 부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