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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남샘 Jan 13. 2023

한 번의 행동은 한 번의 행동일 뿐 내가 아니다(1)

과거와 미래는 지금 이 순간 경험된다

 생각에 빠져있을 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닌 과거 또는 미래에 있으며. 과거를 곱씹거나 미래를 준비하느라 지금-여기에서 살아가지 못합니다. 변화의 가능성은 과거와 미래에 있지 않고 현재에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준비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다 보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현재는 지나갑니다. 

  지금-여기를 살아야 한다는 것은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후회하고 다짐하느라 지금 이 순간이 새로운 후회로 남지 않도록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수용-전념치료에서 이야기하는 '탈융합'과 '수용'은 우리를 '현재'로 열어줍니다. 생각과 거리를 두고, 불편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탈융합’과 ‘수용’은 쉽지 않습니다. ‘피부 안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은 우리를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로 데려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이 불편할 때도 현재를 외면하지만, 그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이 지금 나의 모습보다 나아 보일 때에도 지금 이 순간이 아닌, 마음에 그려지는 과거와 미래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이 순간에도, 마음은 끊임없이 생각, 감정, 자기-판단, 감각, 그리고 기억들을 나에게 속삭입니다. 집중해서 글을 읽다가도 불쑥 떠오른 기억의 한 조각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생각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커져서 주의를 잃기도 합니다. 이처럼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살아가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수용-전념치료에서는 과거와 미래 모두 지금 이 순간에 경험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으로 현재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새롭게 경험됩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도 지금 이 순간에 그려지며 현재의 경험이 됩니다. 과거와 미래가 펼쳐지는 곳은 현재이며, 우리의 삶은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납니다. 현재가 우리가 살 수 있는 진정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생각에 거리를 둘 수 있고 불편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현재 순간에 접촉하기’는 ‘중심을 잡는 과정(centered)’의 한 축이 됩니다. ‘인지적 융합’과 ‘경험 회피’에 빠져있을 때, ‘탈융합’과 ‘수용’을 할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 주기 때문입니다.  

  수용-전념치료에서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항상 현재에 머물러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성숙한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순간에 접촉하기’는 지금 이 순간 ‘가치’를 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할 때 요청됩니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습관적인 생각, 감정, 또는 기억을 떠올려봅시다. 또, 그 생각, 감정, 또는 기억을 경험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그려봅시다. 불편한 흰곰에 사로잡히면 그 흰곰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도망치는데 시간을 쓰거나 붙잡혀서 한참을 시달리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불편한 흰곰이 나타나면 우리는 과거와 미래로 갑니다. 이때,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현재 순간에 접촉하기’입니다.

  ‘현재 순간에 접촉하기’는 지금 이 순간으로 눈을 돌리는 작은 행동에서 출발합니다. 습관적으로 떠오르는 불편한 생각이 다가올 때, 그 생각을 따라 익숙한 길을 가거나 다른 생각으로 덮으려고 하지 말고, 눈을 감고 가만히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생각은 생각대로 둔 채, 지금 이 순간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면, 바람에 창문이 덜컥 거리는 소리,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를 헤아린 후,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봅니다. 읽고 있던 책, 책상의 무늬,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빛이 보입니다.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지나간 순간의 향수가 코끝에 스치며 아련해지기도 합니다.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 보이는 사물, 그리고 향수에 충분히 머무른 후, 처음 우리를 찾아왔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습관적인 생각을 바라보면,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 생각이 조금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그 생각을 따라 익숙한 길을 걸어오고 똑같은 풍경을 봐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똑같은 생각을 방금 보고 듣고 스쳐간 소리, 사물 그리고 향수들과 함께 기억합니다. 지나간 순간을 생각하면서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순간을 생각하는 순간도 지금 이 순간이며, 그 순간의 생각을 지금 이 순간 함께 했던 소리, 사물 그리고 향수와 함께 새롭게 경험함을 깨닫습니다. 이 경험은 우리를 사로잡았던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이 떠오를 때, 이것들을 외면하거나 도망치는데 시간과 힘을 쓰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그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이 있었던 과거의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을 습관적으로 경험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을 지금 이 순간 새롭게 경험하면서 그것들이 지닌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주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시간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때 내 안에 멈춰 있던 시계도 다시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 시계가 움직인 만큼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상을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 수용-전념치료(Acceptance-Commitment Therapy):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생각과 감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무능력하거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탓하는 것을 고통의 원인으로 여기는 심리치료적 접근.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자비롭게 바라보는 '자기-자비'를 치료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김.


* 흰곰: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불편한 생각, 감정, 감각, 그리고 기억들


* 참고 도서

  -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 Hayes, Steven C.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서울: 학지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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