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날로그 남샘 Jan 14. 2023

한 번의 행동은 한 번의 행동일 뿐 내가 아니다(2)

지금 이 순간에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알아차리기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지나간 시간이 더 큰 후회로 남을 수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도 한 때는 지금 이 순간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을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준비로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이 선명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모습이 실망스럽거나 지나간 인연이 눈부시게 다가올 때는 더 그렇습니다. 이때, 우리에게는 그 후회들을 안고 지금 이 순간에서 살아갈 것인지, 또는 그 후회들을 곱씹거나 또 다른 다짐을 하면서 과거 또는 미래에서 살아갈 것인지 하는 선택이 남습니다. 만일 우리가 후회를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다면, 현재에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알아차릴 수 있으며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한 번뿐인 인생을 소중히 여기고,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성실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하지만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다릅니다. 선물 받은 상자 안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만 하는 것과 상자를 열어서 확인을 해보는 것이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현재 순간에 접촉하기’를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에서만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 감정, 감각, 자기-판단, 그리고 기억에 빠지지 않고 그것들과 함께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산 경험은 한 번의 실패를 한 번의 실패로, 한 번의 성공을 한 번의 성공으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줍니다. 더 나아가서, 한 번의 실패도 내가 아니고, 한 번의 성공도 내가 아님을 알려줍니다. 한 순간 우리를 사로잡았던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다른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에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어줍니다. 불편하고 숨이 막히는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도, 기쁘고 행복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도 영원히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것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이 커졌다가 작아지고, 물러갔다가 돌아온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며, 한 번의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이 ‘나’가 아님을 알아차림을 뜻합니다

  현재 순간에 접촉함으로써 한 번의 경험이 내가 아님을 알게 되면,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감정, 감각, 자기-판단, 그리고 기억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나’를 좀 더 멀리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가까이서 봤을 때는 일부분만 볼 수 있었지만, 멀리서 보면 더 큰 ‘나’를 볼 수 있습니다. 일정한 방향으로 나를 정의했을 때 포함시키지 못했던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는 좋은 선생님이다.’ 또는 ‘나는 나쁜 선생님이다.’라고 결론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은 선생님인지 나쁜 선생님인지 모르겠지만 한 번의 행동으로 좋은 선생님 또는 나쁜 선생님이 되지 않기 때문에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 방향으로 나를 정의할 때는 그 정의에 어울리지 않는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을 외면하게 되지만, 한 번의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이 ‘나’가 아님을 알게 되면 내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경험들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정의하며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에 맞게 경험을 해석합니다. 스스로 정의 내린 ‘나’를 지렛대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려는 경향성은 그 이야기에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생각, 감정, 그리고 기억들이 떠올랐을 때 그것들을 외면하게 합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도 자기가 쓴 이야기의 틀에 가두어 한 명의 사람이 아닌,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로 대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합니다. 수용-전념 치료에서는 우리가 체스말이 아닌 체스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맥락으로서의 자기(Self-as-Context)’를 제안합니다.

  지금 이 순간만이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임을 경험할 때, 우리는 과거와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가치를 둔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어떤 시간은 분명 다른 시간보다 많은 기회를 품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만이 내가 처한 유일한 현실임을 너무 늦게 깨달으면 더 이상 기회가 남아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순간에 접촉하기’와 ‘맥락으로서의 자기’를 경험하는 것은, 아이들이 삶의 결정적 시기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진정으로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 경험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지금 느끼는 감정을 꾸밈없이 이야기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원하는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나이테에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품고 자라는 나무처럼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수용한 채 지금 여기에서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합니다.


* 수용-전념치료(Acceptance-Commitment Therapy):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생각과 감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무능력하거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탓하는 것을 고통의 원인으로 여기는 심리치료적 접근. 고통스러운 순간에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자비롭게 바라보는 '자기-자비'를 치료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김.


* 흰곰: '수용-전념 치료'에서 말하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불편한 생각, 감정, 감각, 그리고 기억들


* 참고 도서

  - 이선영. (꼭 알고 싶은) 수용-전념 치료의 모든 것. 서울: 소울메이트, 2017.

  - Hayes, Steven C.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 서울: 학지사, 20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