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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앙 Jan 10. 2024

하수구. 살아있다

단편선

남자는 어제 아침 직장을 그만뒀다. 평소 신경을 살살 긁던 상사와 기어코 싸운 뒤 충동적으로 사표를 던지고 책상을 비웠다. 10년의 세월 공을 들인 커리어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그리곤 pc방에서 섯다 게임을 했다. 그날따라 개패가 들어와 10연패를 했다. 남자는 홧김에 1년 넘게 공들여 모으던 돈을 올인하고 역시나 패했다. 그리곤 다시 100원부터 다시 시작하려다 포기했다. 늘 이런 식이지.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끝없이 도돌임표가 있는 악보 같은 인생.      


 오늘도 오전 7시에 강제기상이다. 조용했던 남자의 오피스텔은 어느 날부터 맞은편 공사장의 드릴소리, 아시바 올리는 소리, 망치질 소리, 중장비의 엔진소리로 가득 찼다. 귓구멍에 싸구려 귀마개를 꽂는 들, 한 번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은 소리는 그의 잠을 깨우기 충분했다. 벌써 한 달 째다. 욕지기를 하며 벌떡 일어난 남자는 화장실로가 벅벅 마른세수를 한 뒤 찬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창 밖을 바라봤다. 역시나 안전모를 쓴 남자들이 노가다를 하고 있다. 구청에 민원을 넣어봤자 ’ 저감조치 하였습니다 ‘라는 문자라 날아오지만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소송을 생각해 봤지만 복잡한 절차와 불확실한 결과는 오히려 독일 지도 모른다. 수류탄이 있다면 창문을 열고 핀을 뽑아 던져버리고 싶었다. 새총이라고 쏴볼까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다. 잠시 즐거운 상상을 한 뒤, 어제 하지 못 한 않은 설거지를 했다. 하수구가 꾸룩꾸룩 소리를 내더니 막혀버렸다. 왜지? 음식물은 철저히 분리해 음식물 봉투에 넣어 물만 흘렀을 뿐인데. 남자의 속은 더 답답해졌다. 이제 하다못해 물도 소화하지 못하는 병신 같은 하수구라니.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남자는 하수구에 시간을 주기로 했다. 이제 남자의 방은 공사장 소리와 하수구가 물을 억지로 삼키는 소리까지 더해졌다. 딱히 할 일 도 없어 책상에 앉았다.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머리가 복잡해 안경을 벗고 눈을 손으로 꾸욱 눌렀다. 알 수 없는 기형 같은 도형들이 형광나방처럼 펼쳐진다. ’탕탕탕‘ ’꾸룩꾸룩‘ 잡스러운 소음과 눈앞에 펼쳐진 도형들에 어지러움을 느낀 남자는 토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화가 치밀었다. 


 남자는 먼저 컴퓨터를 바닥에 내리쳤다. 200만 원짜리 노트북은 맥없이 두 동강이 낫다. 이번엔 언젠가 좋은 일이 있을 때 마시려고 했던 로얄 샬루트 30년 산을 벽에 던졌다. 양주병은 의외로 매우 단단해 깨지지 않고 대신 그가 아끼던 대만에서 사 온 강아지 모양 오브제를 덮쳐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이렇게 됐다 이거지. 남자는 의자를, 책상을, 식탁 테이블을, 후라이팬을, 고급 나들이벌을, 안경을, 시계를, 20년 동안 애장했던 통기타를, 핸드폰을, 스피커를, 쓰레기통을, 침대보를, 양장본 책들을, 명품 가죽 지갑을, 리모아 캐리어를 망치로 부수고 집어던지고 발로 밟았다. 집 안에 멀쩡한 것은 단 하나도 놔두지 않겠다는 그의 불굴의 의지가 맹렬하게 빛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파괴와 죽음에 대한 욕망이 그를 살아 숨 쉬게 만들고 있었다. 곧 집 안 모든 사물들은 본래의 형체를 잃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오피스텔은 이제 공사소리와 하수구 소리 그리고 그의 헐떡이는 숨소리만 남았다. 나는 살아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남자는 하수구 배관을 로얄 샬루트 병으로 내려쳤다. ’쏴아‘ 하면서 물줄기가 사방으로 터지며 쓰레기장이 된 그의 집을 침수시키기 시작했다. 멀쩡한 게 남으면 안 되지. 남자는 옆에 나뒹굴던 펜을 들고 자신의 고막을 찢어버렸다. 


드디어 세상이 조용해졌다. 이젠 모든 감각이 시신경에 집중된다. 남자는 기합소리와 함께 두 눈을 뽑아버렸다. 이렇게 됐다 이거지. 남자는 두 손으로 물로 가득 찬 바닥을 짚으며 창문으로 향했다. 이중창을 열자 찬 바람이 훅 들어왔다. 남자는 공사장으로 몸을 던졌다. 


’ 수류탄이다. 개자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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