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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앙 Jan 10. 2024

트럭, 감금되다

단편선

 그가 21살에 누군가를 흠씬 두들겨 팬 뒤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 보증금을 뺀 뒤 트럭에서 산 지가 어연 7년 째다. 그저 싸우고 나면 악수하고 화해하면 끝나는 줄 알았지. 합의금에 대한 형사법은 수능에 나오지 않는다. 불이 뜨겁다 해도 손을 데어봐야 뜨거운 줄 아는 어리석지만 순수하기도 했던 그는 7년 동안 사회와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렸다. 


 그 덕에 공사판 짬도 나름 찼다. 새벽 6시에서 오후 5시 해 질 녘까지 이어진 노동 뒤에 인부 아저씨들과 소주를, 흐린 날은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켜고는 근처 찜질방에서 자는 것이 그의 감금된 삶이었다. 다만 찜질방이 문을 닫는 화요일에는 공사장 앞에 세워진 자신의 포터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도 첫사랑은 찾아왔다. 남중남고를 나온 뒤 곧바로 군대를 다녀오고 위의 사정으로 바로 공사판으로 향해 그의 핸드폰에 여자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는 그에게도.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작년 겨울이었다. 그와 비슷한 처지의 남정네들에게 몸을 파는 30대 초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다. 애쉬그레이 긴 머리칼이 늘 찰랑거렸고 립스틱을 바르지 않아도 새빨간 입술에 슬퍼 보이는 예쁜 눈을 가진 그녀는 매일 밤 주차된 차량들을 어슬렁거리다 헤드라이트를 깜빡이는 차량과 눈이 맞으면 창문을 똑똑 두드리고 들어간 뒤 이내 30분이 안되어 옷을 추스르며 꼬질꼬질한 지폐 5만 원을 자신의 가슴팍에 쑤셔 넣고 사라졌다. 청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항상 5만 원을 들고 다녔다. 하지만 용기도 나지 않을뿐더러, 1년이 지나자 성적인 욕망은 그녀를 알고 싶다는 사랑의 마음으로 변해갔다. 그날은 비가 내리는 일요일이었다. 내일도 비가 온다 하여 공사장 문은 닫힐 예정이라 청년은 이참에 술이나 진탕 먹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소주 세병과 마른오징어를 들고 포터로 들어와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 잘 웃어주는 비제이가 사연 속 사람들의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축하하고 부도덕적인 행위를 비난하며 위선을 떨어대고 있었다. 그는 역겨운 마음이 들어 라디오를 발가락으로 꺼버렸다. 차창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그의 마음을 진정시킬 때 즈음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목소리였다. 남자의 맞은편 흰색 세단에서 그녀는 상의를 다 풀어헤친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지만 세단남의 억센 팔에 다시 이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청년은 정신이 아득해지며 반사적으로 포터에서 튀어나갔다. 그 뒤 청년에게 얼굴이 묵사발이 나버린 세단남의 얼굴, 7년 전의 악몽이 다시금 떠오르며 주먹질을 멈춘 청년의 피버범된 오른손을 붙잡고 끌고 달아다는 그녀의 비에 젖은 뒷모습, 그리고 자신의 포터로 돌아와 그녀를 옆에 태운 채 질주하는 빗 속의 고속도로가 기억의 단편으로 떠올랐다. 청년은 자신이 음주상태임을 깨닫고 어딘 지 알 수 없는 장소에 가까스로 차를 세웠다. 숨을 헐떡이는 청년에게 그 뒤의 기억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하얀 젖가슴과 촉촉한 입술의 감촉, 점차 격렬해지는 두 사람의 몸사위에 밖의 날씨까지 더해저 차유리는 온통 습기로 가득 찼다.      


 일기예보가 틀렸다. 밝은 해에 눈이 뜬 청년이 황급히 조수석을 돌아봤다. 이미 그녀는 옅은 미소와 함께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녀의 이름, 나이, 어째서 머리는 그렇게 찰랑거리는지, 왜 입술은 그리 붉은 지, 무엇보다 눈은 왜 그리 슬퍼 보이는지 궁금했지만 청년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의 침묵 뒤 여자가 옷을 다시 주워 입었다. 포터 밖으로 나간 그녀는 기지개를 쭉 편 뒤 포터를 빙 둘러 운전석으로 다가왔다. 청년은 차창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에 항상 들고 다니던 5만 원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제야 청년은 왜 그녀의 눈이 슬픈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말없이 사라졌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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