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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앙 Jan 10. 2024

산짐승. 들이키다

단편선

 나는 시골의 공기를 있는 힘껏 들이마셨다. 서울의 쇳덩이 같은 먼지가 없어서인지 차가운 공기가 필터 없이 들어와 콧속을 얼어붙게 만든다. 산짐승이 선산의 묘를 파헤치는 것을 막기 위해 할 수 없이 젊은 인력으로 동원되어 5년 만에 내려온 안동은 미묘하게 달라져있었다. 산과 나무, 논밭에 어울리지 않게 듬성듬성 솟아있는 콘크리트 건물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방해했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에는 추석 성묘를 제외하고는 안동을 내려올 일이 없었다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마저도 외면했기에 콘크리트 건물을 마냥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안동역 기차역에서 내려 선산으로 출발하기 전, 예전 할아버지댁이 있던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기찻길을 주욱 따라가면 5분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어린 시절 뛰어놀던 마당 있는 집이 예전 할아버지 댁이었다, 10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고모와 함께 아파트로 이사 가신 이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기찻길 담벼락에는 유치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조금 공들이면 나름 근사한 벽화거리가 됐을 텐데, 나랏 놈들은 화가지망생들 몇을 시켜 역시나 뻔한 화목한 가족, 나무, 별과 꽃들을 그려놓았다.

어쩌면 안동은 이쪽이 더 어울릴지도.      


 동네는 많은 것이 사라졌다. 면도칼과 바리캉으로 내 머리를 가차 없이 밀던 이발소도, 낚시용품을 팔던 조그만 가게도 사라졌다. 앞만 보고 달리던 아이들도, 집집마다 음식을 할 때 나던 연기도 냄새도. 다행히 수석을 파는 가게는 남아있어 이즈음이구나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골목을 들어가자 할아버지 집이 있던 공터에는 듣던 대로 번지르르한 2층 단독주택이 올라가 있었다. 어린 시절 낡고 녹슨 대문을 열면 사랑방과 본채가 1.5m 간격으로 좌우로 나눠져 있었고 사랑방 앞에는 작은 논마지기에 배추 같은 것들이 심어져 있었고 담벼락에는 호박꽃이 피어있었지. 내가 들어가면 마당에서 밥부터 물어보시던 할머니도, 어색한 미소 지으시며 나를 안아주시던 할아버지도 다신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쓰라렸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을 살면서 한해도 빠짐없이 들어왔지만 내 행동거지가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 불효막심한 놈이라 욕했지만 망각의 동물이오 나는 어리석은 인간이라 또 그렇게 살아가다가 몇십 년이 지난 후 또 후회하겠지. 담배 한 대 피우며 잠시 슬퍼하다 몸을 돌리자 기억 저 편에 남아있던 낯익은 자동차 부품가게의 철문이 눈에 들어왔다. 새빨간 고무다라이 색상의 큰 철문에는 검은 락카로 ‘개조심’이라 쓰여있었고, 너머로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정말로 으르릉 개 짖는 소리가 더해져 공포감을 조성했던 철옹성 같은 곳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간 붉은 철옹성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내가 큰 것이겠지, 내 마음이 더 낡아버린 것이겠지 하며 철문 너머로 뭐가 있나 궁금해 발뒤꿈치를 살짝 들었다.      




 무엇이든 집어삼키던 기계소리는 사라졌다. 오래된 타이어는 바람이 빠진 채 한쪽에 대강 쌓여있고 쓰다 만 고철덩이와 공구들이 주인을 잃고 마당에 나뒹굴고 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기력이 쇠해 짖을 힘이 없어 보이는 노견이 나를 보더니 힘없이 꼬리를 천천히 흔든다.      


오랜만이야. 친구. 이젠 내가 무섭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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