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선
모텔 밖을 나온 것은 체크아웃 시간인 11시가 되기 2시간 전이었다. 겨울임에도 오전 기온은 10도 이상을 웃도는 포근한 날씨였고, 그 해의 첫눈을 아직 마주하지 못한 12월 초였다. 아직 미처 썩어버리지 못한 낙엽들이 바스락거리며 색을 바란 채 모텔 앞 하수구에서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고 있었다. 한 손엔 캐리어를, 등 뒤에는 자신만 한 백팩을 짊어진 남자의 눈은 낡은 전자시계를 다음은 도로 위 표지판으로 향했다. 왼쪽으로 가면 종로 3가, 직진하면 청계천, 우회전은 광화문이었고 뒤로는 모텔이 해를 가리고 있었다.
딱히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막막한 사내 앞에 헤질대로 해져버려 낙엽과도 같은 처지의 넝마를 뒤집어쓴 낡은 엿장수가 탕탕 가위질을 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엿을 씹다가 금니가 빠져버렸지만 그마저도 재밌었던 나이인지라 시시덕거리며 금니에 모래를 넣어 놀다, 해가 넘어가자 별생각 없이 금니는 던져버리고 집에 돌아온 날 어머니에게 등짝을 맞고 난 뒤 엿은커녕 새콤달콤도 조심스럽게 되어버린 사내는 이내 허기진 배를 달래고자 엿장수에게 다가갔다. 주머니를 뒤져 수십 개의 동전을 새는 사내를 본 엿장수는 기다리지 못하고 사내의 손바닥에 있는 동전을 몽땅 쥐어가고는 리어카에서 엿 한 봉지를 대신 툭 하니 올려놓고 다시 탕탕 가위질을 하며 종로 3가 쪽으로 사라졌다.
앉으라고 만든 건지, 차를 막으려고 한 건지 알 수 없는 대리석 위에 백팩을 던지다시피 놓은 남자는 억새개 묶어놓은 엿 봉지를 풀고 그중 가장 기다란 것 하나를 꺼내 물었다. 30년 만에 엿과의 조우였다. 질겅질겅 엿을 빨다가 그 달콤한 맛에 혀만 얼얼해지고 허기는 달래 지지 않자 씹는 맛이 필요한 사내는 엿을 질겅질겅 어금니로 씹기 시작했다. 목적 없이 떠도는 남자의 눈앞에 펼쳐진 8차로에 종로 3가로 향하는 왼쪽에는 태극기를 등에 꽂은 머리가 희끗한 무리들, 광화문으로 향하는 오른쪽에는 현수막을 가로로 한 채 도로를 점령한 푸른색의 시위대가, 청계천으로 향하는 정면에는 스피커를 가짓것 올려둔 채 십자가를 맨 여자 열댓 명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어 8차로의 원래 주인이던 차량들과 버스들은 시끄럽게 경적을 울려대고 있었으며, 저 멀리에는 파란불과 빨간불로 위협을 가하지만 그저 배경이 되어버린 경찰버스들이 들어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온화한 말들과 설득보다는 목소리가 큰 놈이 이긴다는 논리가 모텔 앞을 장악했다. 그가 체크아웃 시간보다 일찍 일어난 이유도 놈들의 아우성 때문에 오전 7시에 그만 번쩍하고 눈을 떴기 때문이니라. 이놈들이 아니었더라면 예정대로 10시쯤 일어나 천천히 녹슨 몸을 물로 닦은 뒤 11시쯤 나와 국밥을 먹을 예정이었더랬다. 국밥집이 11시에 문을 열기에 사내는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어디서 만든 지 모를 엿에 모든 돈을 쓰고야 말았고, 어제의 숙취는 이 엿을 씹는 것 따위로는 해소되지 못할 것임에 분명했다.
사내는 이쯤 되자 오늘 하루는 맑은 정신으로 살기 힘들 거라 생각이 되며, 하루 종일 코에서 술기운이 뿜어져 나갈 것이며, 오늘 하루도 결국 해 질 녘 때 즈음 정신이 들것이며, 해가 지면 술을 먹는 것이 그의 규칙이었기에 오늘 하루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술을 먹고 자버린 그저 그런 날이 돼버릴 것이며, 이는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청춘 중 하루가 삭제돼버린 말을 뜻하는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이 눈앞에 소리를 꽥꽥 지르고 있는 저 빌어먹을 것들 때문일 거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사내는 본인 의지의 나약함에 대한 분노를 저 빌어먹을 것들에게 돌리고는 고함을 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내가 악을 지르며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제 종로 3가로 향하는 왼쪽에는 태극기가, 오른쪽에는 시위대가, 정면에는 예수쟁이가, 반대편에는 한 거지가 고래고래 욕지기를 하기 시작했다.
‘씨팔 엿이나 처 잡수셔!!!’
그 순간 사내의 입에서 금니가 쏙 하고 빠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