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선
30대 중반의 119 구급대원은 악몽에 시달리다 눈을 떴다. 새벽 3시.
창문 사이로 스며든 찬바람이 남자의 땀을 식혔다. 으스스함과 동시에 느껴지는 축축함에 더 이상 잠을 이어가기 힘들었던 남자는 샤워 호스에 흘러나오는 온수에 온몸을 맡겼다.
또다시 지독한 악몽이었다. 2년 전 살리지 못한 소녀가 오늘도 그를 찾아와 원망했다.
“왜 나를 살리지 못했어?"
소녀의 사망 이후, 충격 탓인지 그럴 운명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남자는 영안이 열렸다.
잠에 드나 못 드나 그의 세계는 악몽이었다.
그가 근무하는 동네의 모든 골목, 모든 건물에서 그가 구해내지 못한 영가들이 남자를 아련하게 쏘아보고 있었다. 목을 매달아 혀가 길에 뽑힌 남자. 칼에 찔려 내장이 튀어나온 여자. 불에 탄 새까만 아이. 낙상으로 팔다리가 분리 아저씨. 교통사고로 얼굴의 반이 없는 노인...
그의 눈앞에서 빛이 사라진 시신들과 시신들을 사랑하는 자들의 절규가 항상 그를 대출금처럼 따라다녔다. 금방 죽은 시신에서는 영혼의 냄새가 났다. 냄새는 아무리 씻어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는 지옥의 하느님이 된 기분이었다. 모두가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었고 그는 죽음을 선고했다.
술과 수면제 없이는 잠에 들지 못했다. 잠에 들면 소녀가 찾아왔다.
동료. 선배. 후배. 후배가 소개해준 스님, 스님이 찾아 가랬던 법사, 옆집 여자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 목사의 친구인 신부. 신부가 말렸던 당집도 그의 영안을 닫지 못했다. 그는 내일 아침 상사를 찾아가 부적처럼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던 사표를 수리해 달라고 요청할 셈이었다.
'쾅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남자는 대충 물기만 닦고 빤스바람으로 문을 열었다.
평소 왕래하던 옆집 여자가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소리쳤다.
”아버지가 숨을 안 쉬어요! “
옆집 노인이 오랜 병환으로 고생하고 있었음을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남자는 울부짖는 여자에게 119에 신고하라고 명령하며 반사적으로 튀어나갔다. 습관이 이렇게 무서운 법이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노인의 영혼은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이승을 떠날 채비를 하다가 그를 발견하고는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그가 심장을 누를 때마다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죽음의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제발. 제발. 제발...’
그때 노인의 영혼이 말했다.
"안돼! 제기랄. 난 살만큼 살았어!. 날 살리지 마! 살리지 말라고!”
구급대원은 영혼의 말을 들으면서도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영혼이 다시 제안을 했다.
"딸아이를 위해서라도 이젠 가야 해. 나 때문에 청춘을 다 보내게 할 순 없다네. 그래준다면 내가 당신의 눈을 가려주겠다네.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러니 나를 보내줘.’
남자의 손이 pcr을 멈췄다. 도저히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구급대원은 눈을 감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
딸은 절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