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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 Oct 23. 2021

숲으로 출근합니다

매일 숲에 가게 되었다.

 매일 숲에 가게 되었다. 퇴사한 지 1년 반이 지나가는 동안 모아둔 돈을 탈탈 다 써버렸다. 퇴사하면서 다짐했던 ‘좋아하는 일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기’를 어렵지만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식물을 그리며 일상을 기록하는 삶. 그럴 듯해 보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직은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일만으론 먹고 살 수 없다. 이 길을 선택했을 때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온전히 설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걸릴 거라고. 대신에 그림 그리는 시간이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감사하게도 그런 일을 하게 되었고, 더불어 일하는 내내 식물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코로나 19 그늘에 있는 지금, 파트타이머 자리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상황을 인지하고 어느 정도 각오를 했는데도 내 발 디딜 자리 하나 찾지 못하는 현실이 꽤 당황스러웠다. 통장 잔고를 생각해서 여유 기간을 잡고 자리를 찾기 시작했는데, 노력이 무색하게 계속 퇴짜를 맞으니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에 발만 동동 구르던 중 아파트 엘리베이터 게시판에서 희망 일자리 사업 홍보물을 보게 되었다. 눈이 번쩍 뜨여 다급히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시청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올해 말까지로 기간이 정해져 있는 단기 일자리이지만 이게 어디인가!


  다양한 공공기관들이 사업에 참여하여 단기 근로자들을 구하고 있었다. 3지망까지 지원할 수 있는데 어디를 적어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식물과 관련된 일을 하면 좋을 텐데, 에코뮤지엄, 괜찮을까? 아니야, 집에서 가까운 곳이 좋겠지? 그래도 경력이 있는 곳에 지원하는 게 유리하지 않을까? 무슨 소리?! 인원수 많은 데를 지원해야 뽑힐 확률이 높지! 이렇게 생각하면 이게 맞고, 저렇게 생각하면 저게 맞고 참 어렵다 어려워. 이리저리 생각의 무게를 재며 고민의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1지망은 집에서 가까운 교육 관련 기관, 2지망은 관심이 가는 에코뮤지엄, 3지망은 하는 일이 무난한 여성인력개발센터에 지원했다. 예상보다 신청 인원이 많아 선정 과정에서 시간이 더 소요되어 정해진 일정보다 일주일이 지난 8월 중순쯤 문화예술과 담당자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에코뮤지엄으로 배정된 것이다. 1지망이 집에서도 가깝고 선발인원도 훨씬 많았는데 2지망이 되었다. 그 때 느꼈다. 아, 이제 나랑 식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구나.



 정확한 근무지는 에코뮤지엄 내 곰솔누리숲이다. 에코뮤지엄은 지역 고유의 문화와 자연환경의 가치를 문화 예술적으로 해석하여 보존 및 활용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살아있는 박물관을 말한다. 근무지로 배정된 곰솔누리숲을 비롯하여 갯골생태공원, 연꽃테마파크 등이 해당한다. 곰솔누리숲은 1996년에 만들어진 인공 숲이다. 갯벌을 메워 집과 공장을 지으면서 발생하는 대기오염 물질이 주거 단지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되었다. 곰솔은 해송의 우리말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소나무인 적송에 비해 잎이 억세고 줄기를 감싸고 있는 껍질의 색깔이 검어 곰솔 또는 검솔이라고 불린다. 바닷바람에 잘 견디기 때문에 남해와 서해의 섬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곰솔누리숲에는 35%가 해송, 즉 곰솔이다. (참고. 곰솔누리숲 계간지 1호)


 앞으로 곰솔누리숲을 매일 걸으며 중간에 설치된 미술 작품과 책방을 정돈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숲에는 총 4개의 책방이 설치되어 있는데, 책방의 위 칸에는 숲과 식물, 자연에 대한 도서가, 아래 칸에는 곰솔누리숲 계간지가 비치되어 있다. 책은 숲을 방문하는 누구나 자유롭게 읽을 수 있지만 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계간지는 무료로 배포되고 있어 집으로 가져가서 읽을 수 있다. 또한 책방 근처에는 작가들의 미술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숲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작품들이다. 무심코 앉은 자리가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이라니! 너무 멋지다. 멀찍이 바라보기만 하는 작품이 아니라 일상에 녹아든 작품이라 더 근사하게 느껴진다.


  12월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늦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의 숲을 깊숙이 들여다볼 생각에 설렌다. 출근이 설레는 건 참 오랜만이다. 여러모로 힘든 시기에 좋은 기회를 만나 움직일 수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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