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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 Oct 23. 2021

숲이 바람을 겪는 방법

바람에 맞서지 않고 유연하게 어울리는 것

  해가 머리 꼭대기를 비출 무렵 출근한다. 곰솔누리숲 근무는 총 4명이 하는데 오전과 오후 근무로 나누어져 있다. 오전 근무는 9시부터 1시까지, 오후 근무는 1시부터 5시까지다.  담당자님께서 근무 희망 시간을 물어보셨을 때 둘 다 가능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홀로 오후 배치가 되었다. 상관없었다. 그저 날마다 숲에 갈 생각에 들떠 마냥 좋았다. 담당자님께서는 날씨가 무더운데 괜찮으시겠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셨다.

“괜찮아요. 곧 시원해질 텐데요!”

“그래도 얼마든지 시간 조정이 가능하니까 힘들면 주저하지 마시고 꼭 알려주세요.”


 하지만 첫 날부터 살짝 후회했다. 집부터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5분 사이에 목덜미와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아, 아침에 출근한다고 할걸!’

 다행히 에어컨이 팡팡 나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더니 금세 보송보송 말랐다. 숲까지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가야 한다. 자가용을 타면 30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대중교통에 의지해야 하는 뚜벅이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더군다나 이렇게 더운 날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소환승이 답이다.

 “이번 정류장은 주공 3단지입니다.”

 드르륵, 탁! 하차 문이 열리고 왼발, 오른발 차례로 계단을 내려간 후 보도블록에 두 발을 디뎠다. 심장을 훅 때리고 콧구멍을 틀어막는 열기에 숨이 콱 막힌다. 오늘 날씨 정말 어마어마하네. 여기서 버스를 타도 15분, 걸어도 15분. 뜨겁다 못해 따가운 햇볕에 고민할 틈 없이 바로 환승 버스를 갈아타고 숲 코앞에 도착했다.


 곰솔누리숲은 7개의 숲이 3개의 하천과 3개의 도로에 의해 나누어져 있다. 각각 따로 나누어진 7개의 숲을 산책로와 맞닿아있는 6개의 다리가 이어주고 있다. 쉽게 말해 각각 떨어져 있던 동네 공원을 하나의 산책길로 쭉 이은 것이다. 숲과 숲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마다 입구가 있어 꼭 숲의 시작 지점을 찾아가지 않아도 중간 통로를 통해 숲으로 들어설 수 있다. 나는 두 번째 숲으로 들어서는 입구로 들어간다. 숲이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다소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한다. 미끄러지지 말라고 깔아놓은 발판을 꾹꾹 밟는 걸음이 아직은 가볍다. 아이고, 드디어 출근.


 머나먼 출근길 고생했다는 듯 시원한 그늘이 어깨를 감싼다. 오는 동안 너무나 간절했던 바람 한 모금까지. 반가운 마음에 꿀꺽꿀꺽 삼켜본다. 바깥은 찌는 듯한 더위인데 숲속은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온 듯 확연히 다르다. 햇볕이 내리는 자리는 뜨겁지만, 잎사귀와 가지가 드리운 자리는 선선하다. 언덕길 조금 올랐다고 그새 달아오른 정수리와 두 볼에 부채질해주는 나뭇잎 사이에 폭 안기듯 들어간다. 자, 이제 일을 시작해볼까?

 


 곰솔누리숲은 전체 길이가 4 km 정도 된다. 4시간 근무니 두어 번 정도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려나? 숲을 둘러보며 책방 정리도 하고 작품 주변과 곳곳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우며 환경을 정돈한다. 초록 사이를 거니는 동안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었다. 다양한 잎과 가지들이 저마다의 모양으로 흔들거린다. 뾰족한 잎을 가진 곰솔과 적송은 가지 전체가 흔들려 파도가 넘실거리듯 너울 친다. 새 발자국 같기도 한 중국 단풍나무는 잎이 차곡차곡 겹쳐져 있는데, 바람을 만날 땐 피하지 않고 맞서 잎 하나하나가 각자의 방향으로 파르르 떨린다. 손바닥 크기만 한 잎을 가진 넓적한 풀들은 살랑살랑 손을 흔들고, 굽이굽이 덩굴 잎들은 누구보다 바람의 흐름을 빨리 읽어 단단하게 설 수 있는 자리로 뻗어간다.


 같은 곳에 자리 잡아 같은 바람을 맞아도 흔들리는 건 각자의 몫이다. 저마다의 모습으로 바람을 맞고 바람을 겪고 바람을 보낸다. 여리여리해 톡 부러질 것만 같은 줄기에 손바닥만 한 커다란 잎을 달고도 바람에 쉬이 부러지지 않는다. 무턱대고 바람을 이기려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바람과 어우러진다. 진짜 강함은 저런 유연함에서 나오는 것일 테지. 그래, ‘찐’ 외유내강. 그들을 따라 나도 지금의 내 모습으로 바람을 겪어본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고픈 무더운 여름날이니 우선 이 목마름을 채워보자. 꿀꺽,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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