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나스타시아 Feb 25. 2020

내가 지나온 시행착오를 당신은 겪지 않기를

편집자의 일


처음으로 사표를 제출한 날을 기억한다. 그날 저녁, 사수와 나는 합정동 어느 허름한 술집에 마주 앉았다.

그는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고, 그 앞에서 나는 한없이 울었다.


“죄송해요.”


입안에 머금고 있던 한마디를 겨우 짜냈다. 사수는 나를 한 번 가만히 들여다보고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깊이 들이마셨다가 하늘을 향해 ‘후’ 하 고 내뱉었다. 잠깐의 침묵 이후 말을 이었다.


“지은 씨 옆에 늘 있지는 못하겠지만, 돌아보면 그 자리에 서 있는 선배는 되어줄 수 있어. 밥 먹고 싶으면 전화 해요.”


사수는 밥 먹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집 현관문 앞에 1년 치 영수증을 모아놓는 큰 장식장이 하나 있는데, 그 영수증의 대부분이 타인을 먹인 증거였다. 신입 시절의 나 역시 그 장식장 속 영수증의 한 줌 정도는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화 한 통에도 쩔쩔매는 신입 편집자였던 내가 어느새 그 사수와 같은 나이, 같은 연차가 되었다. 그사이에 나 역시 몇몇 후배를 만나 그들의 사수 노릇을 했다. 일머리가 부족한 후배를 보면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그러다 문득 스스로를 미워하며 출퇴근하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안 그러긴 뭘 안 그래. 더하면 더했지 덜했을 리 없다. ‘나는 사회생활이 맞지 않는 것 같아’ 고민하던 나날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사수를 알기 전에는 막연히 ‘이제 어떻게 하지?’를 생각했다면 그를 알고 나서는 ‘팀장님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처리했을까?’를 떠올렸다. 그러면 풀리지 않던 문제 앞에서 반짝거리는 아이디어가 언뜻 솟아오르기도 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마땅한 답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데, 이직한 회사에서 작성한 보도자료까지 ‘한번 살펴봐달라’며 메일로 보냈다. 사수는 그 모든 미숙과 응석마저 다 받아주었다. 나는 과연 후배들에게 그런 존재였나.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나를 거쳐 간 후배들과 나 사이에 다른 지점을 하나 꼽는다면, 나에게는 그 사수가 있었고, 그들에게는 내가 있었다는 점이다. 사수로부터 받는 데만 익숙했으니, 좋은 선배 노릇을 하지 못했다. 내 사수처럼 후배들을 배불리 먹이지도, 살뜰하게 아껴주지도 못했다. 나는 남의 밥을 먹고 컸으면서, 그 누구도 거저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격언이 있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온 마을’이 좋아지기 를 기다리던 그 ‘한 아이’가 마을 밖으로 나가떨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마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가 걸음마를 뗄 때까지 함께해줄 누군가를 하나라도 만난다면 그는 분명 혼자 알아서 잘 걸어나가리라. 다행히 나는 동행해주는 그 한 사람을 만났으나, 그런 경험을 얻지 못한 이도 부지기수임을 안다.


이 글은 아직 동행하는 선배를 만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쓴다. 사수로부터 받은 선물들을 나누어주고 싶다. 내 성근 글들로는 결코 누군가를 배불리 먹이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 글을 읽은 당신은 내가 거듭한 시행 착오만큼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다못해 ‘이런 재주 없는 사람도 출판으로 10여 년을 먹고살았다는데’ 하는 위로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무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