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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Mar 02. 2020

내 몸에 루틴을 새기자

신입 시절, 나를 아끼던 선배 하나가 몇 가지 중요한 충고를 건넸다. 매일 외국어 공부를 해라, 하루 한 편씩 글을 써라, 적어도 한 시간씩 운동을 해라. 10년이 지나 내가 그 선배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다. 아마도 그 선배는 자신의 지난 10년을 돌아보았을 때 가장 후회되었던 지점을 내게 충고했으리라. 그러나 철모르던 20대는 영어 학원을 등록‘만’ 했고, 어쩌다 한두 번 내킬 때나 일기 같은 글을 끼적거렸고, 남들보다 건강한 편이니 힘든 운동으로 굳이 땀을 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별로 급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10년 전의 나를 만난다면 당장 정신 차리라고, 20대가 평생 갈 것 같냐고 외치며 등짝을 한 대 날려주고 싶다.

자고로 20대란 오늘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도 내일이면 바로 충전되는 시기다. 20대의 나는 경기도 남부에서 북부까지 왕복 네 시간을 출퇴근으로 할애하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생활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체력이 넘쳤다. 별 볼일 없는 나를 뽑아준(!) 회사에 보답하려면, 그리고 신입을 뽑지 않는 출판계에서 겨우 잡은 기회를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면 이 정도의 힘듦은 ‘의지’로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공한 사람들이 흔히 뭐든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성공과 실패는 정신력의 차이라고들 이야기하지 않는가.

그렇게 스스로를 혹사시키며 몇 년을 버텼다. 야근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우면 이내 몸이 조금씩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바다 속 깊은 곳으로 몸이 서서히 잠기는 느낌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도 무거운 솜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은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주말만 기다렸고, 토요일에는 시체처럼 잠만 잤다. 그제야 알았다. 몸은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강철 같은 게 아니라, 일정량의 물을 머금고 있는 항아리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채우지 않고 계속 뽑아 쓰기만 하니까 체력이라는 항아리가 결국 바닥을 보인 것이다. 그제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를 옮겼다. 부모로부터 독립했고, 새로운 회사 근처로 집을 옮겼다.

운동을 해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근처에 있는 피트니스센터에 3개월 회원으로 등록했다. 생전 만져본 적도 없는 기구 천지였지만, 베테랑 같아 보이는 분들을 붙잡고, 천진한 표정으로 “저…… 이 기구 어떻게 쓰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백이면 백, 요령 없이 열정만 가득한 이 운동 신입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애써주었다. 그들 덕에 낙오 없이 운동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나중에는 남에게 묻지 않아도 스스로 스케줄을 짜고 식단을 세워가며 운동할 정도의 요령도 생겼다.


체력은 점점 늘어서 하루 30분 걷기도 힘들어하던 내가 매일 하루 만 보 걷기에다가 한 시간씩 유산소 운동을 병행해도 다리가 휘청거리지 않았다. 아침마다 일어나지 못해서 쩔쩔매던 때가 거짓말인 것처럼, 아침 6시 30분만 되면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체력이 붙은 이후부터는 꾸준히 지속할 만한 운동을 찾아 헤맸다. 걷기운동부터 자전거 타기, 댄스, 요가, 필라테스까지 종목을 바꿔가며 새로운 운동을 시도했다. 땀 흘리는 게 곤혹스러웠던 지난날이 무색하게도, 운동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몸이 되었다. ‘내 몸에 뭔가가 새겨지는 느낌’이 무엇인지 이제 안다. 


삶은 체력이 생기기 이전과 이후로 극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가장 큰 변화는 ‘긍정성’이다. 우선 부끄러운 몸에서 벗어났다. 처음 헬스장에서 샤워할 때는 누군가에게 내 벗은 몸을 들킬까 싶어서 얼른 옷을 갈아입고 샤워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자신감이 붙으니 샤워장에 붙어 있는 전신 거울 속 맨 몸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여유마저 생겼다. 체력은 정신도 단련시켰다. 이루지 못할 것 같으면 지레 겁먹고, 한 번 거절당하면 두 번은 매달리지 않던 성격이었는데, 안 되도 두 번 세 번 시도하는 근성이 쌓였다. 이 근성을 토대로 회사에서 차곡차곡 일의 가능성을 높여나갔다. 몸 여기저기에 조금씩 붙어 있던 군살과 함께 때로는 부정적이고 소심하던 성향이 빠져나갔고, 그 자리를 대범하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채워나갈 수 있게 되었다. 체력이 쌓이면서 선배가 말했던 언어와 글쓰기 실력도 함께 탄력이 붙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일명 ‘사축’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나 같은 애를 뽑아준 게 어디야. 그러니 회사에 충성해야지’라고 다짐하던 내가 ‘나를 안 뽑으면 자기네들이 손해지 뭐’라는 밑도 끝도 없는 정신승리로 무장했다. 이런 자세가 오히려 사회생활에는 좀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렇게 체력은 내 배에 왕王 자와 자신감이라는 두 가지 선물을 안겨주었다.

흔히 편집자라고 하면 두꺼운 안경을 끼고 책상 앞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몇 시간이든 일어나지 않고 교정을 보는 이미지가 주를 이룬다. 이 이미지는 반만 정답이다. 이 ‘엉덩이 싸움’도 체력이 없다면 버텨주지 못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체력이란 일종의 항아리다. 20대에 건강한 시절부터 운동에 습관을 붙이라고 권하는 이유는, 20대에 쌓아놓은 체력을 30대부터 조금씩 나누어 쓰기 때문이다. 그저 가진 체력으로 어찌어찌 버티다가 번아웃이 와서 삶도 일도 의욕을 잃는 선배들, 결국 아픈 몸과 마음을 이끌고 회사 밖을 나서는 선배들, 정말 많이 보았다. 내가 나를 아끼지 않는데 누가 나를 돌보아주겠나. 아프기 전에 스스로를 챙겨주자. 지속 가능한 삶을 가꿀 에너지는 체력에서 나온다.

혹시 누군가 내게 ‘편집자가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면 몸에 습관을 새기라고 말해줄 것 같다. 그 친구에게 선배가 내게 해주었던 그 말을 그대로 돌려주지 않을까. 매일 외국어 공부를 해라, 하루 한 편씩 글을 써라, 하루 한 시간씩 운동을 해라. 몸이 움직이는 순간, 삶의 모든 가능성은 문을 연다. ‘무엇을 해야 하지?’ 생각하기 전에 그저 움직이자. 내가 만든 습관이 내 삶을 얼마나 우아하게 변화시키는지 몸소 체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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