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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Feb 26. 2020

너무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


노력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았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한 친구.’ 이 문장이 나를 향한 주된 평가였다. 이런 성격은 요가를 배울 때도 티를 냈다. 남들 다하는 운동이니 금세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운동신경은 좋은 편이니까. 아침부터 상쾌하게 운동하고 출근해야지.’


천진하게 아침 일곱 시 요가 수업을 등록하고,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다. 스트레칭만 해봤지, 요가는 생전 처음 배우면서 도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제일 앞자리에서 강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스캔했다. 옆 사람이 나보다 잘하는 것 같으면(당연히 모두 나보다 잘했다) 괜히 더 힘주어서 그 동작을 해내고야 말았다. 누군가 내 동작을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지면 얼른 허리를 곧추세우고 자세를 다잡았다.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겠어.’ 


노력신봉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지막에 바닥에 대大 자로 드러눕는 나무자세 말고는 제대로 해낸 동작이 없음에도 그럭저럭 잘 따라 한 줄 알았다.


그렇게 일주일 지났나, 아침에 눈을 떴는데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무리하게 힘을 주는 동작을 반복했더니 그만 근육이 놀란 것이다. 결국 정형외과에서 근육주사를 맞고 ‘요가 금지령’을 명받았다. 10개월이나 등록했는데…. 지인에게 헐값에 수업을 양도했더니 슬슬 속이 쓰렸다. 그놈의 열심병 때문에 요가도 몸 건강도 돈도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던 안쓰러운 기억이다.


요가는 누구와 비교하는 운동이 아니다. 그럼에도 무엇 때문에 그리 열심히 했을까. 생전 처음 하는 운동임에도 ‘그래도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는 강박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열심병에 걸리면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으며, 그 어떤 성공도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 단순한 명제를 잊곤 한다.


문제는 열심병 자체에 있지 않다. 다만 이 열심병이 가져올 후폭풍이 무서운 것이다. 바로 ‘슬럼프’다. 워크홀릭이라고 소문난 선배들은 그저 ‘열심히 하다가’ 일상과 일의 경계가 흐려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일이 재미있어서, 관성에 따라 일하다가, 나중에는 일이 없으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길이 없어서 일에 함몰된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러나 그 상황이 지속되면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된다. 행복하기 위해 일하는 것인데, 일이 아니면 행복하지 못하고 심지어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열심병의 문제는 일이 잘 풀릴 때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열심히 하니까 이렇게 성과도 얻고 인정받는구나’ 싶어서 스스로 자랑스러울지도 모른다. 문제는 일이 고착상태에 빠졌을 때다. 기획은 제출하는 족족 반려당하고, 기껏 편집해서 출간한 책의 판매지수는 요지부동이고, 회사는 ‘매출이 인격이다’를 외치며 편집자를 압박하는 상황이 오면 뇌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번아웃을 선언해버린다. 슬럼프는 이럴 때 슬며시 문을 두드린다. 그때 가서 몸도 마음도 아프면 누굴 원망할 것인가. 결국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없다.


‘열심히 하면 누군가는 알아준다’는 명제보다는 ‘내가 행복해야 내 일도 행복하다’는 명제가 좀더 진실에 가깝다고 믿으면 좋겠다. 일에서 보람도 당연히 중요하다. 열심히 해 성과를 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그런 것들보다 내 삶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100만 명이 사랑해주는 책을 만든다 해도, 만든 사람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 책은 거짓말을 하는 중이다. 스스로가 만든 책이 거짓말하게 놔두고 싶지 않다.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속도와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 


종종 신입 시절부터 책을 기획하고 몇십만 부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는 전설 같은 편집자 이야기가 떠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어느 세계에나 천재는 있지’ 정도로 넘어가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흔하면 그토록 전설처럼 회자되겠는가. 그리고 그와 같은 캐릭터는 대부분 회사 사장들이 자신을 미화할 때 많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볼 때 실존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남들의 압박에 현혹될 필요 없다. 자신만의 속도를 찾자.


《요가매트만큼의 세계》에서는 요가를 바탕으로 삶의 속도와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으며, 그 어떤 동작도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자목이든 척추측만이든 허리가 길든 다리가 짧든 누구에게나 일정 부분 핸디캡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되지 않는 동작을 억지로 따라잡을 필요 없다. 그저 매일의 조금이 모여 어느새 그 동작이 몸에 익는 것처럼, 삶의 어려움들도 과정의 일부일지 모른다. 그저 이 모든 게 수련이라 생각하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반복해보고 싶다.


요가를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문장이 있다. 요가 선생님이 계속 학생들에게 외치는 “힘을 좀 빼보세요”라는 말이다. 잘하겠다고 힘을 줄수록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조금만 몸에 힘을 빼고 욕심을 줄이면 다른 길이 보인다. 어쩌면 삶에 필요한 자세는 수많은 욕심과 노력이 아니라 익숙한 반복과 내려놓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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