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22.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삶의 방식은 지구상 인구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러니 특정 가치관이 나에게 딱 들어맞는다고 해서 남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내가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로 시작하는 말들은 대부분 상대에게 폭력이 된다. 본인은 마음속 말들을 상대에게 풀어놓았으니 속이 시원할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상대가 던진 돌덩어리를 맞고 삶의 의지를 잃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언제나 누군가에게 제안을 할 때는 ‘이 말이 당사자에게 어떻게 들릴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이다.
어젯밤 잠들기 직전에 브런치 알림이 울렸다. ‘기타 목적으로 은영님이 제안을 하셨습니다’라는 알림이었다. 평소에 브런치에 매일같이 당신 관련 글을 쓰면서 이런저런 제안 메일을 많이 받았다. 어떤 이는 글을 모아 책으로 엮어 내자는 제안을 했고, 또 어떤 이는 밤에 너무 힘들고 외로워서 잠이 오지 않을 때 말동무가 되어줄 테니 연락 달라는 위로를 보냈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내 도움이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기타 목적’이라고 했으니 이번 메일 또한 그런 것 가운데 하나려니 생각하고 메일함을 열었다.
그가 보낸 메일에는 단 한 줄의 글만 있었다. “자꾸 책이름 올리지 마요...”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이 메일에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 하나? 나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노력하는 타입이다. 최대한 은영이라는 분의 입장에 이입해보려 애썼다. 내가 책을 홍보하느라 글을 쓴다고 생각했나? 아니, 아무리 내가 출판편집자여도 어떻게 죽은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 책 홍보를 한다는 말인가. 심지어 나는 그 출판사와 인연도 없다. 아니면 그 책 관계자인가? 그 책에 대해 좋고 나쁨을 말한 적도 없는데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심지어 ‘자꾸’라는 단어와 마지막 말줄임표는 ‘참고 참았다’는 의미를 풍기고 있다. 그에게 되묻고 싶었다. 그러면 편집자 부부가 서로가 읽은 책으로 서로를 떠올리지 않으면 무엇으로 떠올린다는 말인가. 심지어 100일 가까이 쓴 이야기 가운데 책 관련 이야기는 두어 번뿐이었다. 반면에 당신이 좋아하던 노래 이야기는 수도 없이 올렸다. 음악은 되고 책은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요즘에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독을 취소하는 시대 아닌가. 내가 구독해달라고 구걸한 적도 없고, 우리가 서로 안면 있는 사이도 아닌데 조용히 구독 버튼 눌렀던 것처럼 구독 취소하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댓글도 아니고 ‘제안’ 버튼을 눌러서 본인 브런치를 걸어놓고 메일을 보내는 정성이 참 궁금했다. 그리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 메일은 ‘무례’라는 단어 말고는 해석할 수 없다는 결론이 들었다.
자기 직전에 SNS와 브런치에 해당 메일의 캡쳐를 올리고 ‘은영님 앞으로 제 글 읽지 말아달라’고 올렸다.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그는 자신의 글을 올리지 않고 타인의 글만 읽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브런치는 본인 글 없이 20~30명 구독만 되어 있었다. 나한테 무례를 군 것처럼 다른 브런치 글작가들에게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브런치 제안 버튼을 눌러 “자꾸 ***하지 마요...”라고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메일을 받을 미래의 누군가를 위해 공개적으로 노출했다. 내 행동은 댓글 대신 메일을 보낸 그의 행동과 정반대의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분 스스로 자신의 요구가 떳떳하다고 생각했다면 남들도 볼 수 있도록 댓글을 달았겠지.
한껏 마음이 상해 잠들었던 나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브런치를 살폈고, 그분이 내 구독을 끊었음을 확인했다. 시간이 하루쯤 지나고 보니 조금 아쉽다. 결국 그 메일의 의도는 알 수 없는 게 되어버렸으니까. 정말 궁금하다. 책이라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이 날 만큼 책이 너무 싫었을까? 아니면 내 글이 마음에 안 들었을까? 은영 님, 정말 왜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