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24.
그저께부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몸을 한쪽으로 뉘이고 자다가 잠결에 반대편으로 돌아서면 뇌가 한쪽으로 쏟아지는 느낌이 들면서 눈이 팽그르르 돌아버린다. 깊은 물에 뇌를 담가놓은 기분.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그 물이 찰랑거리며 뇌를 한쪽으로 밀어버렸다. 어지럼증이다.
요즘 부쩍 외로움이 많아진 웅이는 눈치가 100단이 되어버렸다. 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은 때마다 ‘누나 깼다!’ 하며 한껏 소리 높여 울기 시작한다. 어제는 밤 11시 30분쯤 잠을 청했는데, 웅이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뜬 시간만 새벽 1시 50분, 4시, 6시 30분 세 번쯤 기억난다. 게다가 녀석은 한껏 똑똑해져서 꼭 내 귀에 대고 목청 높여 운다. 잠귀가 밝은 나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다. 가뜩이나 어지러운데 웅이까지 울어 제껴서 정말이지 혼이 반쯤 빠져나간 것 같았다. 잠결에 몇 번쯤 “웅이야 제발 그만 울어!” 하고 소리를 지르고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다음에 다시 잠을 청했으나 어지럼증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처음에는 악플 메일 때문인 줄 알았다. 잠들기 직전 그 메일을 보는 바람에 자는 동안에도 내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날, ‘오늘은 괜찮겠지’ 싶어 다시 잠을 청해보았으나 어지럼증은 여전했다. 결국 이틀 내내 잠을 설친 나는 계속 멍한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종일 한껏 예민했다. 잠을 못 잤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내 마음속에 어떤 두려움이 숨어 있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틀째 되니 그 두려움이 조금씩 커지더니 내 불안을 한껏 키워버렸다. 결국 내 머릿속은 그 생각으로 가득해졌다.
‘나도 뇌종양 아냐?’
당신을 떠나보내기 전 내 행동 가운데 가장 후회하는 지점이, 당신이 아프다고 말할 때 바로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 것이다. 단순 두통인 줄 알았다가 고생이란 고생은 다 시키고 막판에 응급실로 달려갔다가 만 이틀 만에 긴급으로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실에 울면서 들어가는 당신 앞에서 내 무지를 얼마나 탓했는지 모른다. 이틀 동안 어지럼증으로 고생하는 내내 나는 계속 그날로 되돌아갔다. ‘내가 아프면 엄마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웅이는 누가 키우나’ 같은 상상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점심을 먹고 잠깐 짬이 났을 때 열심히 구글에 “잠잘 때 어지럼증”, “수면 어지럼증” 등 몇 가지 단어를 조합해 쳐보았다. 이석증일 확률이 가장 높아 보여서, 회사 근처 이비인후과를 방문했다. 내 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눈에 고무 안대 같은 것을 씌운 뒤에 내 몸을 한껏 휘두른 의사는 “말씀하신 증상은 이석증이 가장 비슷한데요, 이석증 진단은 안 나왔어요. 원래부터 이석증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병원 오시는 사이에 나았을 수도 있고요. 우선은 어지럼증 상비약 드릴 테니까 또 어지러우면 드세요”라며 처방전 한 장을 쥐어주었다.
1층 약국으로 내려가 처방전을 내밀었다. 약사가 “어지러우신가봐요. 혹시 생리하시나요? 생리하시면 어지러울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엇. 그러고 보니 이번 주 생리 주간인데? 어지러움증 상비약을 손에 쥐고 약국을 빠져나오는데 ‘나도 이제 건강염려증에 걸린 것인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