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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Mar 02. 2021

익숙한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태도가 작품이 될 때>

1

책을 집어 드는 이유는 다양하다. 좋아하는 작가라서,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표지가 예뻐서, 관심 있는 주제라서, 다들 좋다기에 진짜 좋은가 확인해보고 싶어서 등등 각자의 성향마다 책을 골라 드는 이유가 다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저자’와 ‘주제’에 움직이는 편이다. 평소 아끼던 저자라서, 관심 많은 주제라서, 또는 전혀 생각지 못한 주제라서. 책 제목이나 표지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읽고 싶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태도가 작품이 될 때>는 왜 집어 들었나. 내게는 드문 이유인, ‘표지’ 때문이었다. 과거 언젠가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의 ‘좋다’는 추천을 받고 집에 들여놓기는 했는데 선뜻 들추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서재 어딘가에 쌓아놓았다. 예술 분야 책들에 관심도 지식도 약한 편이기도 하고, 특히 현대미술에는 문외한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표지’에 있었다. 무료한 어느 날에 서재에 들어갔다가 이 책 표지에 눈길이 갔다. 바스 얀 아더르의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I’m too sad to tell you)〉.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왼쪽 머리 쪽에 손을 얹고 서럽게 울고 있는, 남성으로 보이는 인물이 언젠가 ‘머리가 아프다’며 서럽게 울던 당신과 너무 닮아 보였다. 이 사람은 왜 그토록 우는지 알고 싶어져서 읽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첫 꼭지에 등장한다. 네덜란드 출신 미술가인 아더르가 왜 우는지는 저자도 알지 못한다. 그는 친구들에게 우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그 모습을 엽서로, 비디오로 보냈다고 한다. 그는 이 작품뿐 아니라 대부분의 작품이 길에서 쓰러지거나, 지붕에서 떨어지거나,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등 스스로에게 고통과 통증을 느끼게끔 하는 예술을 남겼다. 게다가 그는 작은 돛단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작품 활동의 마지막을 남겼다. 당신과 닮았다고 생각한 인물이 당신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하니 좀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책에서 아더르는 ‘죽었다’는 단어 대신 ‘사라졌다’고 표현된다. 아마도 그의 시신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텐데, 죽음이라는 삭막한 표현 대신 ‘사라짐’으로 마지막이 기록된다니 꽤 신비롭다. 이제 당신의 죽음에 다정해지려 한다. 이를 위해 당신이 ‘죽었다’고 말하는 대신 아더르처럼 ‘어딘가 먼 곳으로 사라졌다’고 표현해야겠다.



2

예술은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이들의 전유물이다. 특히 현대미술은 그 특징이 극대화되는 경우 같다. 책에서 설명하는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삶을 의심하고, 비틀고, 비껴본다. 저자는 그들이 작품을 통해 세상을 모습을 해석해주는데, 대부분 해석에 소수자의 시선이 담겨 있다. 어쩌면 일부러 ‘소수자’로 분류될 만한 작품들을 위주로 설명해주었을 것 같기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이 편집자의 일에도 적용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기획도 다르게 보이게끔, 독자에게 좀더 효과적으로 받아들여지게끔 이리저리 굴려보아야 한다. 물론 그리 훌륭한 편집자는 되지 못하는 관계로 매번 고민만 하고 내 삶에 적용시키지는 못한다.


3.

전반적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태도가 따뜻했고, 각각의 작품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엿보였다. 작가의 글쓰기 역시 제목처럼 ‘태도가 작품이 된’ 케이스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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