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결혼도 사랑도 믿지 않던 시절에 나는 타인의 사랑에도 굉장히 무례했다. “나 결혼해”라는 누군가의 말에 “어떻게 한 사람과 평생 함께할 생각을 할 수 있어? 나도 나를 못 믿는데 어떻게 상대를 믿어?”라고 되물었다. 아무리 반짝이던 연애도 몇 년만 지나면 빛이 바라는 세상인데, 어떻게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모험을 감행한다는 말인가. 어떻게 지금 사랑이 평생 간다고 믿을 수 있는가.
당시의 나는 뭐랄까, 사랑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사랑은 온전하고 평생 같은 색깔을 내보이는, 변하지 않는 다이아몬드 같아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니 결혼한다는 이에게 축복은커녕 그런 말도 안 되는 무례를 범했겠지. 내 눈에 평생 영롱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행하기에 인간은 너무나 유한해 보였다.
괜찮은 사람과 만나 나쁘지 않은 사랑을 해본 지금은 안다. 사랑은 완벽한 그 무엇이 아니라, 그저 세월과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불완전한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불안을 끌어안으며 함께 가꾸어나가는 것이다. 연약한 한 사람이 파고 들어간 동굴 안에 기꺼이 함께 들어가 앉아 있는 것이다. 버거운 세상에 기댈 수 있는 어깨 하나를 빌려주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당신 곁에 기꺼이 남아 버텨주는 것이다.
김비 작가와 박조건형 작가의 결혼은 우리의 그것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었다. 자꾸만 우기(박조건형 작가가 우울을 겪는 시기)을 지나는 위태로운 짝지를 바라보며 애태웠을 김비 작가의 마음에 감정이입하고는 했다. 둘은 불안한 스스로를 믿지 못해(또는 믿지 못하는 스스로를 본 상대가 실망할까봐) 종종 힘들어한다. 불안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완벽해진다는 사실을 그들이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더는 함께할 사람이 없는 나로서는 두 사람의 위태로움이 부러웠다.
부부가 함께 글을 쓴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당신에게 회사에 다시 돌아갈 생각하지 말고 집에서 리아와 함께해달라고 제안한 적이 있다. 그때 당신에게 “1년에 100만 원만 벌어와”라고 말했는데, 이 말에 당신은 “내가 (편집 일 말고 무엇으로) 100만 원을 어떻게 벌어”라고 반응했다. 내가 언급한 ‘100만 원’은 ‘당신을 책 작가로 만나고 싶다’는 의미였는데. 내가 조금 더 열심히 응원해주었다면 당신 이름이 저자로 박힌 책 한 권 남길 수 있었을까. 당신의 평생 팬인 나는 그게 조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