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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Jul 01. 2022

혼자에서 함께 축구를 시작하다

두 해 전, 백년해로를 약속했던 반려자와 10여 년을 동거한 고양이가 동시에 암에 걸리더니 3개월 차이로 세상을 등졌다.


'가장 아끼던 두 존재가 더는 나와 같은 하늘 아래에 없다.'


이 한 문장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생애 처음 경험한 무기력


우리는 서로의 삶의 기본값이었다. 가족을 만든다는 건 함께 할 나날들을 어떻게 쌓아갈지 고민하는 것뿐 아니라 그 자리가 비워진 이후까지 상상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머리가 하얗게 새어 함께 걷는 미래만 떠올렸을 뿐, 상대가 없는 세계는 그려보지 못했다. 내게는 하나의 물음만 남았다.


'남겨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제까지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던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했다. 거기에 어떤 답이 있을까. 결국 찾지 못하고 삶 주변을 서성거렸고, 그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평소에는 촘촘한 계획과 노력을 쌓아 무엇이든 이루어내는 유형이던 나는 그날 이후 그냥 무너지기로 했다. 계획 따위 어차피 예상치 못한 불행 하나에 속절없이 망가지는 법이니까. 그렇게 나는 나를 살아 있는 존재 가운데 가장 불행한 인간으로 취급했다.


혼자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자주 당신과 고양이가 먼저 가 있는 그 세계를 상상했다. 그곳에서 만날 우리를 그려보았다. 그러나 나는 겁이 많았다. 혼자 살 자신도 없었지만, 내 가족들과 함께 죽을 용기도 없었다.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날이 이어지던 시간을 가만한 식물처럼 견뎌냈다.


그저 이불을 뒤집어쓰고 매일 울다가 잠들고, 자다가 일어나 우리에 대한 추억을 글로 적다가 다시 울며 잠드는 날을 반복했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다 보니 휴대전화 속 만보기는 하루 200보 내외를 찍었고, 햇살을 몸으로 맞이한 날의 기억도 점차 희미해졌다. 생애 처음 겪어보는 무기력이었다.


회사, 애플워치 그리고 축구


지난한 삶에서 나를 꺼내준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회사였다. 남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붙잡혀 있는 회사가 족쇄 같을지 모르겠지만, 혼자 남은 시간들을 어찌할 줄 모르던 내게는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몇 안 되는 끈이었다.


내 존재의 가치를 즉각적으로 증명하는 일이 있어 다행이었고, 출근해서 따뜻한 동료들과 눈 맞추는 순간들이 나를 버티게 했다. 내일 앉을 자리가 있어서 오늘을 견뎌냈다.


다른 하나는 애플워치였다. 애플워치는 매일 바닥을 기고 있던 내게 친구 토란이 다가와 "같이 운동하자"며 손목에 채워준 물건이었다. 늘 함께 있지는 못해도 시계 하나로 연결된 친구들과 서로 응원을 주고받는 그 시간들이 나를 몇 걸음이라도 걷게 했다.


친구들에게 무기력한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나약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움직였다. 덕분에 고양이와 반려인 병간호를 동시에 하느라 완전히 손 놓았던 운동을 조금이나마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축구였다. 평일에는 할 일들이 있으니 어찌 저찌 견뎌내는데, 주말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주말은 온통 당신과 함께였는데 말이다. 누구도 손 내밀지 않는 주말마다 나는 가자미처럼 납작 엎드려 암흑 속으로 침잠해버렸다.



타인과 나를 연결시키는 축구


그날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친구 R이 나를 끌어내기 위해 말을 걸었다. "저 오늘 축구 일일클래스 참여할 건데 같이 갈래요?" 첫 체험은 무료라는 말도 덧붙였다. 장소는 집에서 한 시간 떨어진 거리인 강서구였고, 한 시간 뒤에 수업이 시작한다고 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서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친구의 손에 이끌려 한 축구교실 클래스에 참여했다. 처음으로 만져본 공이었고, 뭐 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도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머릿속을 그렇게 깨끗하게 비운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두 시간만큼은 나는 '사별자 가족'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혼자 살아가야 할 나날들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첫 체험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자려고 누웠는데 자꾸만 머릿속에 아까 그 축구공이 날아다녔다. 결국 그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날 밤 마지막 든 생각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다.


'아, 이거 못하는데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잘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두 존재를 병으로 잃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헬스부터 벨리댄스, 요가, 필라테스, 점핑 트램펄린 등 각종 운동을 놓지 않고 꾸준히 해왔다. 하지만 대부분 혼자 움직였고, 다른 이와 합을 맞추어야 하는 운동은 거의 처음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팀으로 하는 운동이 내 상태를 개선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혼자 있을 때마다 침잠했으니까. 누군가와 무엇으로든 함께 있어야만 했다.


축구는 매일 타인과 나를 연결시켜주고, 혼자가 아니라 같이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며, 바닥을 박차고 달리게 해주었다. 회사 동료들과 애플워치 그리고 축구. 질펀한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를 살려준 이 세 가지가 이야기하는 건 결국 '연결'이 아니었을까.


이 정도면 축구해도 되지 않아?


늦은 나이에 든 축구 바람으로 매일같이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는 나를 보며 주변에서 걱정이 많다. '여자가 웬 축구를'이라는 놀라움, '네 나이가 몇인데'라는 우려,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걱정까지. 그런데 말이다, 이거 하지 말라는 건 나보고 다시 바닥을 기어다니던 그 시절로 돌아가라는 소리로 들린다.


물론 밥도 안 먹고 울기만 하며 글을 쓰던 그 시간이 내게 꼭 필요했지만, 그것만으로 지난한 삶을 채우기에는 남은 나날이 꽤 길 수도 있지 않은가. 작년에 우리 부부의 역사를 담은 책 <들어봐, 우릴 위해 만든 노래야>(후마니타스)를 출간하자마자 '지금 생을 마쳐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는데, 지금은 축구하고 싶어서 조금 더 살고 싶다. 심지어 세 번째 책도 내고 싶어졌다.


이 마음 정도면 축구해도 되는 거 아닌가.



*해당 글은 오마이뉴스의 선연재되고 있습니다.

 브런치에는 15일 늦게 공개됩니다. 

 (언젠가 축구왕 연재 링크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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