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편집자는 평소에 궁금했던 주제를 직접 기획으로 풀어내는 직업이다. 한번쯤 엮어내고 싶은 키워드나 아이디어가 생기면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한다. 정중한 이메일 한 통이면 일면식이 없어도 괜찮다. 일반 독자라면 답변 받을 확률이 희박하지만, 출판편집자라면 팬이 보내는 구애가 아닌 동업자의 제안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얼기설기 엮은 기획안을 상대에게 내보이며 구체화를 주문하고, 그가 주억거리는 아이디어에 몇 가지 소스를 얹으며 이 말만 건넬 뿐이다. "이 주제로 책 한 번 써보시면 어떨까요?" 여기까지 성공했다면 이제는 가만히 앉아 전문가가 차려주는 지식의 성찬을 맛보기만 하면 된다.
편집자의 관심이 가닿는 무엇이든 책이 될 수 있다. 이 말은 즉 편집자인 나는 누구와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뜻이다. 흔히 '책'이 가장 돈이 적게 드는 간접 경험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돈(월급)을 받으면서까지 이 간접 경험을 최대치로 얻고 있는 셈이다.
덕분에 수많은 사람을 접해왔다. 다녀본 적도 없는 유수 대학의 교수부터 누구나 한 번쯤 만나보고 싶어 하는 유명 작가, 소설가, 시인, 연예인, 정치인까지. 어디에나 글을 쓰는 사람은 있었고, 그들은 보통 책을 내고 싶어 했다. 작가들은 크든 작든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이어서, 그들의 책을 만드는 시간들은 나를 성장시켰다.
이 세계는 워낙 방대해서 내 시야를 한껏 넓혀 주었지만, 동시에 내 눈을 빠르게 가리기도 했다. 하나의 세계에 오래 머물다 보면 다른 삶을 상상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이 세계가 내 기본값이 되어버렸고, 이를 벗어난 세상을 잘 상상하지 못하게 되었다. 책의 세계가 아무리 넓다고 한들 그것들이 세상의 전부는 아닌데.
이럴 때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나와 맞닿은 세계를 고수하는 것. 다른 하나는 아직 접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전자를 실행하기는 쉽다. 그저 이 순간을 유지하면 된다. 하지만 이 선택은 앞서 언급했듯이, 내 시야를 확장시키지 못한다. 마음은 편하겠지만 일정 부분 고립되며, 스스로의 가능성을 차단하므로 성장의 한계도 분명하다.
나는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덕분에 한 번 새로운 확장을 맛보았듯이, 또 한 번 성장하고 싶다. 시야를 넓히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맥락의 관계를 만들면 된다. 일 밖에서도 그렇다.
출판이라는 우물 안에 있던 나는 얼마 전 축구라는 새로운 우물로 세계를 확장했다. 우리는 나이도, 사는 곳도, 직업도, 주변 환경도 다 다르지만 축구 하나로 한데 섞여 지낸다.
물론 다양한 사람을 만나려는 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축구를 하다 보니 내 주변은 자연스럽게 그간 상상할 수 없었던 친구들로 가득해졌다. 내가 어디를 가야 항공사에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친구에게서 "언니, 언니" 소리를 듣고, 이과생 앱 개발자와 함께 뛰어 다닐까. 그런 직업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말이다.
서울 사는 30대 직장인 이지은은 그보다 스무 살 가까이 어린 10대 고등학생과도 함께 경기를 뛰고, 경기도 고양시에서 사는 50대 중년 가정주부와도 필드에서 만난다. 평일에는 까마득한 후배인 1990년대생 사원과 까칠하고 근엄한 1980년대생 과장 사이지만, 주말이면 운동장에서 공을 맞대고 자매처럼 깔깔거린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양손으로 브이(V)자 포즈밖에 못 취하는 내 옆에서 온갖 다양한 표정과 잔망스러운 액션들을 남발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도 은근슬쩍 그들을 따라해본다.
띠동갑뻘인 내게 "언니는 학교에서 교련 배우고 다닌 거 아니에요?"라며 놀리는 친구들 앞에서 진짜 교련 수업을 들었던 탓에 움찔거릴 때도 있지만(선택과목이었다고 울부짖었다), 나이와 삶의 역사를 초월해 한자리에서 재잘거리는 지금이 놀라울 때가 잦다. 내 작은 세계를 기꺼이 깨뜨려주는 이 친구들이 결국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내심 궁금하다.
게다가 이 친구들은 부족한 나를 기꺼이 받아들여준다. 축구 초보자인 내가 패스 미스로 빌드업을 망쳐도 그들은 내게 "나이스 트라이!", "괜찮아요, 언니"라고 소리쳐 준다(물론 서너 달째 이 모양이다 보니 요즘은 조금씩 화를 내려고 시동 거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언니라서 다행이다). 내 성장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어렵다고 포기하려 들 때마다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들이대며 응원을 건넨다.
한번은 우리 팀 에이스의 발목 부상으로 그를 대신해 내가 친선경기에 출전해야 하는 상황을 앞둔 적이 있다. 경기는 코앞이었고, 다들 그날 일정이 안 되는 바람에 궁여지책으로 나를 데뷔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전혀 도움이 안 될 텐데. 나 때문에 져도 화내지 말아줘"라며 벌벌 떨던 내게 P는 "언니, 우리 팀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소중한데요"라는 다정한 말을 건네었다. 물론 나를 살살 달래서 경기를 뛰게 할 목적이었겠지만, 그 말이 "우리에게 언니는 이미 충분해요"처럼 들려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다행히 그날 비가 내려 경기가 취소되었고, 아직까지 경기 데뷔는 아직 요원하다).
학창 시절, 어른들은 종종 "지금 친구가 평생 간다"는 말을 내게 건네었다. 당시에는 그 말을 그저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안다. 그 충고는 각자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상황에 휘말리지 않고 순수하게 서로를 받아들이는 사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직접 경험한 선배가 삶의 후배에게 건네는 다정이다.
살면서 함께 몸을 부대끼며 뒹굴고, 격 없이 서로의 성장을 응원해주는 사이가 얼마나 드문가. 나는 축구 덕분에 그런 이들을 만났고, 서로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관계를 하나둘 쌓아나가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새삼 축구가 기꺼워진다.
이제는 축구가 좋아서뿐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뛰고 싶어서 잔디밭을 달린다. 부족한 나를 받아준 그라운드 위 친구들에게 고마워서, 그들이 보여준 세계가 생생해서, 좀 더 빨리 그곳에 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