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의 학대

2020.01.02.

by 아나스타시아

친구 1년, 애인 1년, 배우자 4년. 도합 6년을 함께했으나 당신이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모습은 딱 한 번 봤다. 결혼 후 첫 명절을 치르고 난 다음이었다. 며느리는 손님이 아닌 머슴이라는 사실에 충격받아 종일 우는 나로 인해 당신 또한 충격을 받았다. 가부장제라는 견고한 벽 앞에 선 우리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이 상황을 타파할 방안을 고민하다가 ‘벗어날 수 없다면 피하자’고 결론지었다. 우리 집에 먼저 가고, 당신 집에 그다음으로 가기로 했다. 나는 큰집인 우리 집의 제사 음식 준비를 돕지 못해 미안해했고, 당신은 누나와 조카를 만나지 못해 서운하던 차였기에 나름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이 시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입장을 통보했다. 노발대발하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 들려왔다. 시종일관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던 당신이 갑자기 “됐어, 끊어! 끊으라고!” 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한마디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던 것이다.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얼어버린 나 대신 고양이들이 슬금슬금 당신 곁으로 다가갔다. 웅이와 리아는 동그래진 눈으로 당신에게 “우엉? 우엉?” 하고 말을 걸었다. 상처받은 당신은 어두운 방에 앉아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당신은 말했다.


“나 엄마 몇 년 안 봐도 상관없어. 자식이 당신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 내가 고쳐줄 거야.”


이 엇갈린 생각이 불행의 시작 아니었을까. 우리는 시엄마의 존재가 부각되지 않아야 화목하다고 느꼈고, 시엄마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간섭이 우리를 옥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분은 자식의 행복을 위해 엄마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먹는 음식부터 건강 습관까지 본인의 통제하에 있어야 비로소 안심하는 타입이었다. 이러한 습성은 당신이 질병에 걸린 이후 병적인 집착으로 이어졌다.


본인이 무엇을 보고 읽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당신을 붙들고 시엄마는 매일같이 무언가를 지시했다. 핸드폰도 제대로 못 다루는 당신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자연치유 관련 동영상을 보냈다. 한번은 당신이 예능 ‘미스터트롯’ 동영상을 틀어놓았다. “엄마가 보내줬다”고 했다. 보내준 영상은 아까 지나갔는데, 자동 연결되는 다른 영상을 몇 분째 들여다보고 있던 거였다. 그때마다 시엄마에게 전화해 분노를 쏟아냈다. 제발 영상 같은 거 좀 그만 보내시라고. 택배도 멈추고, 지시도 멈추고, 그냥 우리를 가만히 좀 놔두라고. 내 폭발에 잠시 수그러들며 ‘알았다’ 대답했지만 다음 날이면 다시 영상 링크를 날렸고, 당신에게 먹여야 한다는 물건으로 가득한 택배 폭탄이 집 앞에 쌓였다. 당신은 점점 어린아이가 되어가고, 시엄마는 계속 아집을 부렸으며, 그 사이에 선 나는 자꾸만 무릎이 꺾였다.


시엄마가 당신에게 반드시 먹여야 한다는 음식은 스무 가지가 넘었다. ‘지금 속이 쓰려서 먹어야 하는 약 소화하기도 벅차다'고 항변하면, 음식을 줄이는 게 아니라 속쓰림에 좋다는 음식 수 가지를 추가로 택배 발송했다. 나중에는 지쳐서 시엄마에게 당신 상태를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다. 시엄마는 한껏 성이 난 내가 무서워서 당신을 보러 올라오지 못했다. 그렇게 그분은 스스로 고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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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이 떠났으니 더는 시엄마가 나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을 때마다 시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욱신거린다. 당신이 떠난 뒤에 시엄마는 나에게 “나는 정말 이렇게 하면 살 줄 알았다. 살릴 수 있을 줄 알았어. 이렇게 갈 줄 꿈에도 몰랐어”라고 말했다. 진심일 것이다. 시엄마는 임종이 임박한 당신의 눈꺼풀을 뒤집어 까며 “아들, 얼른 벌떡 일어나라. 벌떡 일어나”라고 요구하는 분이었다. 그분의 한숨에 내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전 세계 1프로 생존률이라는데 어머니가 무슨 수로 낫게 해요.” ‘평균 생존율 1년 5개월’, ‘당신 예상 생존율 3년’, ‘전 세계 완치율 1프로 이하’라는 수치는 당신 수술하는 당일에 다 함께 들은 이야기였다. 시엄마는 몰랐던 게 아니라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시엄마는 부족할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초등학교 선생으로 수십 년 일한 전문직 여성이다. 그 나이대 사람으로는 드물게 컴퓨터도 잘하고 책도 썼으며 전교조 활동도 할 만큼 자기 의지가 있고 진보적이다. 그런 사람도 극한 상황 앞에서는 이성을 잃어버린다.


한번은 한껏 지친 내가 엄마에게 “어머니는 지금 환희 씨를 자기 아들이 아니라 남편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환희 씨 아내 자리를 탐내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나만 빠지면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때였다. 나와 시엄마의 줄다리기에 또 다른 고통을 받던 우리 엄마는 한숨을 쉬며 “뭐가 그리 대단한 자리라고. 그냥 줘버려. 반품한다고 해”라고 일갈해버렸다. 그 말처럼 정말 당신을 놓아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서로를 조금만 덜 사랑했다면 나는 기꺼이 시엄마에게 당신을 반품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당신의 원가족이 우리가 엄연한 독립된 개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전통적인 가정 아래에 나고 자란 시엄마에게 당신은 ‘한 명의 온전한 인간’이 아닌 ‘영원한 내 아들’이었다. 덕분에 시엄마는 본인이 사랑하는 아들의 가정을 꾸준히 불행으로 밀어넣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학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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