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아빠가 죽은 그날은 마치 어제처럼 선명하다. 김포에 있는 어느 병원 응급실이었다.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고 응급실로 뛰어갔다. 의자에 앉아 모니터에 적힌 ‘이OO 환자 위급’ 문구를 보며 ‘위급이라면 대체 어느 정도라는 거지?’ 생각하던 차였는데, 옆에 앉은 남자 둘이 아빠 이름을 언급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OO 씨 딸이 온다는 거지?”
“저, 제가 이OO 씨 딸인데요.”
형사라고 했다. 순간 몸이 경직되었다. 아빠가 무슨 사건에라도 연루된 것인가? 칼이라도 맞은 것인가? 걱정을 한가득 담아 답변에 응하는데, 나이 든 남자가 물었다.
“이OO 씨 사망은 언제 아셨습니까?”
“네?”라고 되물었더니 그들은 그저 얼버무리다가 자리를 떴다.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 생각했다.
다시 모니터를 보는 시간, 응급실 근처를 서성이던 또 다른 남자가 보였다. 통화 소리에 “그러니까 딸은 언제 온다는데” 말이 들렸다. 아빠 지인이구나 싶어 말을 걸었다. 그는 난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OO 씨, 돌아가셨어요.”
“그럴 리 없는데요, 간호사가 저보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는데요” 대답했더니 그가 짧은 한숨을 쉬고는 따라오라고 했다.
응급실 안은 어수선했다. 아저씨가 어느 간호사를 붙잡고 뭐라 뭐라 말하니 간호사가 내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의사 앞으로 안내받았다. 그는 나를 자리에 앉히고는 ‘사망하셨고’, ‘병원에 도착하셨을 때는 이미 숨이 멎은 상태’ 등을 나열했다. 나지막한 목소리였던 것만 기억한다. 이후로도 여러 설명을 들었는데 다 흘려들었다. 지금 이게 다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다.
의사의 설명 이후, 간호사는 나를 아빠에게 안내해주었다. 천을 걷어 얼굴을 확인하라는데,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났던 것도 같다. 왜 나는 하필 혼자인가.
이후로는 모든 게 미흡했다. 아빠는 오후 12시쯤 돌아가셨는데, 아빠를 군포로 모시고 오기까지 열 시간이 걸렸다. 사고 협의마저 잘되지 않아 장례를 나흘 치렀다. 남들보다 하루이틀 늦게 보내서일까. 마지막 얼굴을 마주하고 염을 할 때, 화장한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그가 아닌 것 같았다. 얼굴이 약간 파랗고 온몸이 부어 있었다. 이게 아빠라고? 이 아저씨는 대체 누구야, 생각이 스쳐 지나가던 차에 주변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었고, 나도 덩달아 힘껏 울었다.
장례 이후, 아빠를 꿈에서 딱 한 번 마주했다. 어디 갔다 왔냐는 내 물음에 아빠는 “자꾸 나를 죽었다고 하니까, 너희가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내가 숨어 있었다”고 말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 말에 괘씸해하다가 잠에서 깼다. 엄마 아빠가 자주 가는 절에 갔다가 한 스님께 이 이야기를 했는데, 스님이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잠깐의 침묵 이후 말씀하셨다.
“지은 씨, 아빠를 이제 놓아주세요.”
그 말에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사실 알고 있었지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종종 생각한다. 간호사가 천을 걷어 얼굴을 확인하라 했을 때 아빠의 얼굴을 바로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어색하게 화장한 그 얼굴이 아니라, 죽음 직후였다면 말이다. 지금 막 사망한 아빠를 들여다보고, 귀에 대고 편히 가시라고 말씀드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나는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을 빨리 받아들이고 좀더 일찍 보내드릴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아빠를 떠올릴 때 “자기 사주가 나보다 10년은 더 살 팔자라더니”라는 말을 종종 꺼낸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빠가 안쓰러워진다.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도 갑작스러웠지만, 당신에게는 더했겠다 싶은 것이다. “죽음은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임을 우리는 모두 간과했다.
많은 이들이 죽음을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알지 못하니 무섭고 내게는 먼 미래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죽는다’는 자명한 진리를 종종 떠올린다면 삶에 좀더 진지해질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아빠를 마주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의 마지막을 꼭 지켜볼 것 같다. 그 하얀 천을 천천히 올리고, 귀에 대고 나지막이 말해줄 것이다. 그건 많이 고생했다고, 이제는 편히 쉬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