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페나크, <몸의 일기>
전화가 온 시간은 낮 12시였다. 아빠는 용건이 없다면 절대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평일 근무시간에 전화를 걸다니,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낯선 이의 다급한 목소리. 사고였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횡설수설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지만 그 예감이 죽음으로 이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빠는 그렇게 유언도 없이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마음의 준비 없이 맞이한 이별이라 그런지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눈물 없는 장례식이라니, 나는 의외로 꽤 덤덤하게 아빠를 보낼 수 있나보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내가 생각보다 괜찮은 줄 알았다.
아니, 사실 괜찮지 않았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다가도 문득 아빠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 울컥, 어김없이 눈물이 쏟아지곤 했다. 예컨대 길에서 오래간만에 마주친 누군가가 “잘 지내요?”라고 안부를 물을 때, 우연히 읽은 책에서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라는 평범한 문장을 들여다봤을 때 순식간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목울대를 치고 올라왔다. 한번 아빠의 기억이 지나가고 나면 잔잔하던 감정이 요동을 쳤다. 이미 아빠는 떠났는데, 나는 아직도 아빠를 보내지 못한 것이다.
잔잔하던 감정이 한번 사고를 치고 나면 이내 후회되는 장면 몇 가지가 머릿속에서 반복되었다. 세월에 치여 잊고 지냈던 사소한 행동들 하나하나가 수시로 무의식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빠 대신 남편 손을 잡고 들어갔던 결혼식 첫 장면이나, 어색한 대화를 견딜 자신이 없어서 전화기만 만지작거리다 내려놓던 순간들. 살가운 포옹 한 번 건네고, 손 한 번 제대로 잡아볼 용기조차 없었던 시간들. 결국 작은 스킨십 하나, 말 한마디였는데 그걸 못하고 당신을 보냈다. 아빠는 누리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고 나는 주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가장 후회스러운 부분은 우리가 결코 살가운 부녀 사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민망하고 부끄럽다는 이유로 서로를 향한 말도 행동도 너무 아끼는 부녀관계였다. 그래서인지 유언도 없이 떠난 아빠가 내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으셨을지 곰곰이 유추해보아도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도무지 아빠의 속마음을 모르겠는데, 아빠에게 물을 수가 없다. 이해 못할 이 상황이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자꾸만 궁금해졌다. 아빠의 마지막 순간은 어떤 장면이었을까. 나한테 무슨 말을 남기고 싶었을까. 나처럼 아빠도 우리 사이를 후회했을까. 이 질문들에 답을 찾기로 했다. 만약 답을 찾는다면, 기꺼이 아빠를 보내드릴 수 있을 테니까.
아빠란 존재는 이별 직전에 자식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할까.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 《몸의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한 남자가 딸에게 유산으로 남긴 ‘자신의 몸의 연대기’가 책 내용의 전부다. 열두 살 때부터 생의 마지막에 다다른 여든일곱 살 시기까지 남자 주인공의 몸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변화를 보며 아빠의 실제 몸과 비교해보고, 내가 보지 못한 아빠의 일생을 조금씩 유추해보았다.
책 안에는 나와 아빠가 아무리 살가운 사이였어도 차마 대화로 나눌 수 없었을 법한 은밀하고 성(性)적인 이야기부터, 중년부터 시작되는 여러 가지 몸의 아픔과 어려움, 그리고 만약 우리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20여 년 뒤에 맞이했을 각종 노화 과정까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내가 모르는 아빠의 유년기부터 아빠도 모를 아빠의 노년기까지, 이 책을 통해 아빠의 생애를 읽었다.
책에서는 주인공이 하나둘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엄마와 다름없던 비올레트 아줌마가 눈앞에서 발작하며 갑작스럽게 떠나는 장면, 주인공이 나이 열 살밖에 안 되었을 때 돌아가신 심약했던 친아버지의 마지막 모습, 자신보다 당연히 더 오래 살 줄 알았던 손자 그레구아르의 죽음, 우정 어린 단짝이던 티조와의 영원한 이별까지, 하나의 인연이 끝날 때마다 주인공은 그들의 몸에 관한 내용을 기록해놓는다. 그들이 생전에 보여주던 걸음걸이, 실루엣, 목소리, 미소, 몸짓, 표정, 필체 같은 흔적들을 떠올리는 것이 그만의 추모방법이다. 비록 몸은 떠나가지만 몸이 남긴 기억들은 남아 있는 법이다.
나도 아빠의 몸을 기억해본다. 왼쪽보다 약간 짧던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 가로로 길고 뭉툭했던 엄지손톱, 고된 노동으로 인해 앞으로 약간 굽어버린 둥근 어깨, 아픈 무릎 탓에 느리고 굼뜨게 움직이던 몸과 팔자걸음, 어색한 농담을 건넬 때 약간 수줍어하며 짓던 웃음, 서예를 배운 듯이 정갈하던 필체까지, 아빠의 몸은 머릿속에 하나하나 생생히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이어질 때면 비로소 아빠의 죽음이 실감 났다.
아빠는 나에게 무슨 말을 남기고 싶었을까. 나는 소설 《쇼코의 미소》에서 “살아간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라는 문장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한때 내게 큰 존재였던 것들이 어느 순간 인연이 다해 사그라지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의미로 읽었다. 아빠도 그걸 원하지 않을까. 내가 당신의 죽음을 부정하고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홀로 길을 걸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까. 아무리 부정해도 한 번 다한 인연을 다시 돌이킬 수는 없는 법이니 말이다. 《몸의 일기》가 아빠를 기억하는 수단이었다면, 《쇼코의 미소》의 저 문장은 나를 위로하는 수단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제대로 울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아빠는 없지만 아빠를 기억하는 나는 존재한다. 어쩌면 아빠는 내가 기억하는 만큼 인생을 더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아빠가 남긴 유언도 없고, 우리의 마지막 눈 맞춤도 없었지만 아빠의 표정, 목소리, 특유의 손동작, 필체 같은 것들은 내가 기억하고 있다. 아빠가 그리울 때면 그가 남긴 기억의 흔적들을 가끔씩 떠올려봐야겠다.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기억하고, 그 기억들을 토대로 계속 살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