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이기는 늙은 열정
어쩌면 힘든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익숙함 대신 불편함을 선택했는데 거기에 열정까지 더해야 하니 말이다. 미래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고 있는데 열정을 보태 열심히까지 해야 하다니.
스스로의 선택이고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함이지만 솔직히 속도가 더딘 건 어쩔 수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억지로 떠밀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아주 열정적으로 그 일을 한다.
피아노를 치는데 열정적이었던 때가 있었다.
원하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손목에 결절종이라고 하는 혹이 여러 번 생기기도 했다. 혹이 난 부분이 아팠지만 딱히 치료방법도 몰랐던 터라 없어질 때까지 참고 견디다가 나아지면 또 피아노를 쳤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것도 그런 꿈을 꾼 적도 없지만 그저 피아노 치는 게 좋아서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반면 좋아하지 않지만 꼭 해야 하는 일 앞에서는 확실히 처리 속도가 느리고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하기 바빴다.
수학이 그랬다. 수학선생님을 열렬히 좋아했음에도 수학 성적이 늘지 않은 건 그만큼 수학이 어렵고 싫었기 때문이다. 시험을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부해야 했던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했던 과목이었으니까.
40대 중후반.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지금까지 해왔던 일에 성숙함이라는 옵션이 더해져야 하거늘, 평생 가져갈 좋은 습관보다는 버려야 할 익숙함이 많다 보니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일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아무래도 열정의 난이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타협이 아니라 ‘나이에 맞는 강도를 찾는 것’이라고 해두겠다. 젊을 때의 열정을 갖기에는 세포도 너무 나이 들었음을 느낀다. 으쌰으쌰 하려다가도 금세 지쳐서 헐떡거린다. 처음부터 레벨을 너무 높게 잡았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지난 한 달간 매일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 30분간 걷기
퇴근 후 TV 보는 대신 3시간씩 글쓰기
기상시간 30분 앞당겨 독서리추얼을 지켰다.
원래의 계획보다 조금씩 시간이며 강도가 빠지는 기록(?)이지만 이걸 지키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다. 젊은 사람들 앞에선 명함도 못 내밀겠지만 매일 꾸준히 불편함을 참아내는 나 자신이 조금은 대견하기도 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거나 강한 충격을 받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서 습관을 바꾸거나 버리지 못한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 ‘의지’ 하나로 버티고 있으니 그 의지를 붙들기 위해 머리를 얼마나 굴리고 있겠는가? 매일 게으름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편안한 안식처인 것처럼 속여 나를 끌어들이려고 한다. 그놈과 싸워 이기려면 불편함이 얼른 익숙함이 되도록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더디긴 해도 한 달 전과 나는 달라져 있으니까.
언젠가 웃으며
불편했던 오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이야기할 날이 오겠지?
‘힘든 작업’을 ‘꼭 해야 하는 목록’에 집어넣고 ‘익숙하게’ 해낼 때까지 절대 빼내주지 않을 거라고, 불편한 게 편한 게 되는 날이 오긴 오네? 라며 미소 지을 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