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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Oct 23. 2024

50년 한결같은  ‘엄마의 리추얼’을 본받기로 했다

마음을 모으는 하루의 시작 버튼

엄마는 5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셨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따라 성당에 다녔던 엄마는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기도를 하셨다. 병원에 입원해도 여행을 가도 빠짐없이. 나도 몇 번 엄마와 같이 기도를 한 적이 있는데 기도를 준비하는 과정이 성당에서 미사를 준비하는 과정만큼 나름의 절차가 있고 경건했다.


테이블 안쪽에 넣어둔 방석을 꺼낸다.
살짝 먼지를 떨어내고 편안한 자세로 앉는다.
기도서를 펼치고 펼친 페이지를 오른손으로 가만히 쓸어준다.
서랍에서 성냥을 꺼내 초에 불을 붙인다.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보며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기도가 시작됐다. 기도는 한 시간 동안 이어졌고 그 사이에 엄마는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고 마음을 모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한 시간씩 꾸준히 50년을 이어간다는 게 가능한 일이라는 걸 엄마를 보면서 알았지만, 난 단 일주일도 지속하지 못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던 뼈아픈 깨달음이다.


엄마는 하루의 시작인 그 한 시간이 지금까지 건강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씀하셨다.

주위에서 엄마같이 좋은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늘 자기 안의 악과 싸우고 있다며 그걸 사람들이 모르니까 하는 말이라고 했다. 엄마가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이기에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평판이 좋다는 건 그만큼 엄마가 노력하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작이 새벽 5시의 기도시간임을 나는, 엄마와 나만큼은 알고 있다.


단지 습관 혹은 루틴이라고 하기엔 엄청난 집중력과 온 마음을 쏟아야 하는 그 시간을 ‘엄마의 리추얼’로 정의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온 세상을 품은 것처럼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지고 풍성해진다.




배우 류승룡이 무명 배우이던 시절,

힘들어하며 배우 인생을 포기하고 싶어 할 때 그의 아내가 한 말이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지금 당신은 터널 안에 있는 거야. 터널을 지나가면 곧 빛이 보이겠지?“


동굴에 갇힌 것처럼 막막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 답답했는데 아내의 말 한마디에 큰 위로를 받고 더 열심히 노력했다며, 지금 동굴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터널에 머무르면 동굴이지만 터널을 기꺼이 지나가면 빛이 보일 것이라고.



난 지금 터널에 있는 걸까? 빛 속에 있는 걸까?

동굴에 갇힌 것 같지만 어쩌면 터널은 이미 지났을 수도 있고, 터널을 지나 빛을 본 것 같지만 어쩌면 터널 안에 있을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시간의 왜곡이 나를 다시 언제 어디로 데려갈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지만, 어쨌든 난 지금을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엄마의 리추얼을 소환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성공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것인지, 터널 속에 있는 건지, 터널을 벗어나기 직전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강력함을 믿고 다시 글을 쓰는 나로 돌아가기로 했으니 그 마음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리추얼이라도 필요했다. 그래서 엄마를 따라 해 보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만큼을 꾸준히 해내는 ‘좋은 리추얼’이 하나라도 있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갈 테니까.


사실 하루를 시작하기 전 클래식을 들으며 마음을 가다듬는 40분의 리추얼을 시도한 적이 있는데 보름 만에 흐지부지해졌다. 회사가 바빠지면서 늦은 귀가로 지친 몸을 누이는 걸 우선하다 보니 하루를 놓치고 이틀을 놓치다가 몇 년이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이제는 아직 몸에 익진 않았지만 운동도 시작했고 글도 다시 쓰기로 다짐했으니 마음을 가다듬는 일까지 일석삼조의 하루를 살아보려는 것이다. 한 시간 이른 기상이라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최근 이사를 하면서 방 하나를 공식 서재로 꾸며놓고는 한 번도 들어가 책을 읽지 않았다.

책장에서 책만 골라 거실 소파나 침대에 누워서 독서를 했더니 자세도 흐트러지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그만큼 독서 시간도 줄어들었다. 사들인 책은 책장 한가득인데 읽은 책 보다 읽지 않은 책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서재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서재로 들어간다.
책을 고르고,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켠다.
불빛에 드러난 책의 텍스트를 잠시 멍하니 본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한 시간 동안 독서를 한다.


‘독서 리추얼’을 위해 침실에 있는 스탠드를 서재로 옮겼다. 

형광등을 켤 수도 있지만 리추얼은 일종의 ‘의식’이다 보니 공간의 분위기가 중요하다. 그 시간 동안 나를 다른 나로 변환시키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마음에게 시간을 허락하기 위해.


리추얼(Ritual)은 마음을 담아 무언가를 기원하는 시간이다.

독서 리추얼이 일반 독서와 다르려면 마음을 먹어야 한다. 단순히 같은 시간에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을 넘어 그 행위에 온 마음을 바침으로써 마음이 가는 방향을 결정할 수 있도록!



엄마에게 배운 리추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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